◎궁전주택 형식불구 소박한 멋 지녀구례에서 하동쪽으로 빠지는 29번 도로를 타고 5㎞쯤 가다보면 지리산자락이 펼쳐놓은 기름진 들판을 만나게 된다. 행정구역으로 구례군 토지면에 속해 있는 여러마을들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는데 속칭 「구만리들」이라고 부른다.
뒤에는 노고단에서 뻗어 나온 형제봉과 왕시루봉이 앉아 있고 앞쪽에는 섬진강이 굽이쳐 흘러가고 있다. 이 들판에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3대 명당중의 하나인 금환락지가 있다하여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와 살고 있다.
금환락지란 노고단에 살고 있는 선녀가 섬진강에서 머리를 감다가 빠뜨린 금가락지 형국의 명당인데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하늘의 도움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다는 것이다. 99칸 집으로 널리 알려진 구례 운조루는 금환락지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터를 처음 개척하고 99칸의 대저택을 세운 사람은 유종숙씨의 9대조인 삼수공 유이주이다.
유이주는 1726년 경북 안동군 해안면 입석동 출신으로 28세되던 175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낙안 군수와 용천, 풍천, 삼수부사를 지낸 무관이었다. 창건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유이주의 행장을 살펴보면 『세상사람들이 이 오미동 집터를 길지라고 했으나 바위가 험하여 누구든 감히 집터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공(유이주)께서 「하늘이 이땅을 아껴 두었던 것은 비밀스럽게 나를 기다리신 것이다」고 말하고 수백명의 장정을 동원하여 터를 닦았다』고 나와 있다. 땅을 파보니 명당터를 입증이라도 하듯 어린아이 머리만한 돌거북이 출토되어 유씨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고 있다.
운조루의 건축적 특징은 누마루방이나 누다락방을 두어 스케일이 웅장한 궁전주택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소박한 멋을 잃지 않고 있는 점이다. 정남향의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행랑채 기와지붕 너머로 안산격인 오봉산이 유유히 흘러가고 햇볕은 처마 깊숙이 들어와 겨울철에도 더없이 따사로운 기운을 뿜어 준다.
가는 길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구례가는 직행버스가 하루 세차례 있다. 구례 터미널에서 하동방면 버스를 타고 오미리입구에서 내린다.<이형권 역사기행가>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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