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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출신 극우 성향/「뉴햄프셔전 승자」 뷰캐넌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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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출신 극우 성향/「뉴햄프셔전 승자」 뷰캐넌 누구

입력
199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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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포드·레이건 등 언론보좌역/백인우월주의 등 공화내 비주류미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나선 패트 뷰캐넌(57)은 역시 「뉴햄프셔주의 사나이」였다. 92년 대선 당시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예상밖으로 40% 지지율을 획득, 58%를 얻은 대통령 조지 부시후보의 간담을 서늘케한 뷰캐넌은 4년뒤인 이번에는 기어코 승리를 쟁취했다. 그것도 유력한 선두주자 밥 돌후보를 박빙의 차로 따돌리면서 거둔 예상밖의 쾌거였다.

아일랜드 이민 아들로 가톨릭 신자인 그는 「미국 제일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이번 선거에 나섰으며 공화당 보수파중에서도 강경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38년 워싱턴 DC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동네 주먹대장 노릇을 하며 성장했던 그는 지금도 미국의 국익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보수적 사고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공화당내 「작은 보스(Boss)」를 자처해 왔다.

「외치보다는 내치」라는 신고립주의를 표방해온 그는 원래 신문기자 출신. 명문 조지타운대와 컬럼비아대 신문대학원을 졸업한 62년 세인트루이스 글로브지 신문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60년대 후반부터 리처드 닉슨및 제럴드 포드 전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맡기도 했고 75년부터 TV 정치대담 프로에 공화당 우파를 대변하는 논객으로 자주 출연,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와함께 워싱턴 타임스지등 수개 신문에 칼럼을 게재해 필명을 날렸으나 한때 히틀러를 「탁월하고 용감한 인물」로 찬양,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대통령 재임시절인 85년 대통령 언론담당 보좌관으로 발탁된 이후 백악관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92년 대선때 공화당 후보로 출마, 당시 초반 승부처인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 전력을 쏟아 돌풍의 주역으로 부각됐었다.

하지만 당내 지지기반이 미약하고 선거자금 동원능력도 타후보에 비해 부족, 선거막판에 갈수록 뒷심이 떨어지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도 밥 돌후보의 선거자금 모금이 이미 1,930만달러에 달한데 반해 뷰캐넌은 440만달러에 불과하다. 여기에 백인우월주의가 기저에 깔린 그의 정치적 색채에 대한 흑인등 소수계의 반감이 거세 공화당 주류측에서 뷰캐넌의 후보지명을 꺼려한다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그는 9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미국의 꿈이, 미국의 미래가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도 했다.

『서양문명의 핵심적 가치와 이상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이처럼 극단적인 사고방식때문에 이번에도 타후보들은 물론 언론들의 집중공격을 받아 전당대회에서 쉽사리 승리할 것으로 점치기는 어렵다.

류머티즘으로 군입대를 면제받았던 그는 71년 현부인인 셀리와 결혼했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다.<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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