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또 사고를 낸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많은 반성과 거듭된 다짐이 있었건만 아직도 구태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니 한심스럽다는 생각 뿐이다.한국은행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조폐창 신권도난 사건이나 부산지점 헌돈 불법 유출사건, 이번의 구미지점 사기사건은 모두 한 뿌리에서 비롯된 똑같은 사건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실망감이 더 크다. 근무기강해이와 관리부실이 어떻게 손 대 볼 수 없을 정도로 만성화 고질화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번에 범인들이 사기에 이용한 백지당좌수표는 가명에 엉터리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했고 은행고무인과 관계자 직인 실인 등이 모두 위조된 것이었으며 또 그 수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4명)의 이름과 고무인 직인 실인 등은 사전 등록이 돼 있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사기를 당한 것은 규정에 따른 최소한의 확인의무조차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통화신용의 중추기관이고 국고수납업무를 대행하는 중앙은행의 행원은 고사하고 일반은행의 창구직원으로서도 자격이 미달하는 태만하고 불성실한 근무자세였다.
한국은행이 사소한 부주의로 자꾸 사고를 내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뚜렷한 원인이 드러난다면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도 오히려 쉬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이유도 없이 한국은행조직이 전반적으로 근무태만과 불성실 관리부실의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에 대해서는 뭔가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은 돈을 찍어내는 곳이고 나라의 화폐를 관리하는 곳이다.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한국은행을 사고연발의 상태로 방치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질책을 받고 문책을 당하고 스스로 반성 다짐을 거듭하는데도 왜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지 그 원인부터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는 은행원들의 전반적인 사기문제나 금융인들의 직업윤리와 관련해서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최근 들어 은행과 비은행금융기관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 종사자 스스로가 직업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갖고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금융사고는 내부에서 스스로 자랄 토양을 얻게 된다. 이번 사고도 은행 내부에서 연루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게 수사관계자들의 얘기이고 한국은행의 잇단 사고들도 모두 내부인들이 저지른 범죄나 실수들이었다. 금융인의 사기와 직업윤리문제를 한번 심각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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