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7개 타이틀 싹쓸이지난 15일 아침 일본의 스포츠신문들은 1면에 주먹만한 제목글자를 박았다.『전인미답의 위대한 업적』 『천하통일』 『역사를 만든 혁명아』등의 굵직한 제목들은 독자의 눈을 잡아 끌기에 족했다.
비단 스포츠신문만이 아니다. 아사히(조일) 요미우리(독매) 마이니치(매일)등 주요일간지도 큼직한 사진과 함께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의 총격사건을 제쳐놓고 1면 머리기사등으로 사상 초유의 장기 전관왕(7관왕) 하부 요시하루(우생선치)의 대업적을 보도했다.
25세의 하부는 14일 야마구치(산구)에서 열린 오쇼이(왕장위) 결승 4차전에서 타이틀보유자 다니가와 고지(곡천호사·33)를 꺾고 4연승, 일본장기 7개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었다.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대업적을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그것도 감기몸살로 38도의 고열에 시달리며 이뤄냈으니 『오다 노부나가(직전신장)가 일본전국을 통일한 이래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날 이후 하부는 일본국민의 우상으로 떠올랐다.자연히 전국의 기원에 장기를 배우려는 초등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등 하부신드롬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그동안 「천재소년」의 이미지로 학습지광고에 등장했던 하부를 겨냥한 제과회사, 게임기회사등의 광고교섭도 잇따르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가 표창을 검토하지 않고는 못배길 만큼 하부선풍이 거세다.
한 평론가는 『하부의 등장으로 야구계의 우상인 노모 히데오(야무영웅)와 스즈키 이치로(영목일랑), 스모의 다카노 하나 등과 함께 일본을 움직이는 20대 미남 4인방이 짜여졌다』고 흥분했다.
하부의 천재적인 장기재능은 일찌감치 발휘됐다. 이미 초등학교때 도쿄 하초지(팔왕자)시의 소년장기클럽에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6학년때 소년 메이진(명인)을 거머쥐었다. 같은해 일본장기연맹의 프로기사 양성기관인 「쇼레이카이(장려회)」에 6급으로 들어가 3년만에 4단을 따 졸업했다. 19세에 최연소로 요미우리(독매)신문의 류오(용왕)타이틀을 거머쥔 이래 파죽으로 기계를 헤집으며 7개타이틀 석권에 이르렀다.
일본의 신경과학 전문가들은 하부가 장기대결중 논리적인 분석과 추론을 담당하는 좌뇌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을 담당하는 우뇌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활발한 점에 주목해 타고난 천재임을 강조한다. 이같은 포장은 하부신드롬이 한결 확산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하부신드롬을 떠받치는 또하나의 기둥은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맞아 일본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관료등 사회중심세력의 구심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어 일본이 「젊은피」의 수혈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게임세대인 하부의 약진이 몰고온 선풍은 지난해 옴진리교소동에서 드러났듯 게임기와 만화에 길든 일본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공허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지적하듯 일본의 젊은이들은 만화와 컴퓨터게임에 길들어 세기말의 허무주의와 초자연적 능력을 갈망하는 신비주의에 경도되고 있으며 이 허망한 꿈의 빈틈을 젊은영웅들이 메워주고 있다는 것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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