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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1/한국화(한국의 예맥: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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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1/한국화(한국의 예맥:8)

입력
1996.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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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따라 오원·소남·소치 3뿌리/장승업맥­전통화법 조석진·안중식서 김은호 등 이어져/이희수맥­문인화 바탕 이응로는 현대적 회화기법 개척/허연맥­남종산수화 정착 허백련·허건때 크게 번창중국 집안(지안)의 고구려고분벽화는 한민족의 놀라운 회화적 재능을 입증해 주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당시의 생활문화와 의식세계를 담은 이 벽화들은 치밀한 화면구성과 완벽한 묘사력, 살아 움직일 듯한 생동감과 율동미로 황홀한 감동을 안겨 준다. 이러한 탁월한 미적 감각과 예술적 소질은 조선시대까지 화려한 맥으로 이어져 도화원에서 활동한 화원과 사대부들에 의해 꽃을 피웠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며 한국화의 맥은 세 갈래로 나뉘어진다. 도화서 화원출신인 오원 장승업을 잇는 맥이 가장 크고, 문인화전통이 강한 소남 이희수의 맥과 정통적인 남종산수화를 정착시킨 소치 허연의 맥이 근대한국화단을 풍요롭게 했다.

불학의 오원은 산수, 인물, 기명(살림살이에 쓰는 그릇), 사군자 등 모든 영역에서 천재적 기량을 보여준 대가였다. 북종과 남종산수를 아우르는 힘찬 필력으로 전통화법을 추구했던 그의 화풍은 조선시대 마지막 화원인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으로 이어져 근대한국화의 토대가 됐다.

소림과 심전은 남화풍의 산수뿐 아니라 인물, 화조, 기명 등의 그림에 소질을 보이며 당시 서화계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근대회화의 시조로도 일컬어지는 두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학교인 경성서화미술원(1911년 창설)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길러냈다. 1회 졸업생이 정재 오일영, 묵로 이용우, 무호 이한복, 이용걸, 2회가 이당 김은호, 3회가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심향 박승무, 정재 최우석 등. 한국 근대회화의 2세대에 속하는 이들은 중국화풍을 따라가는 기존의 화보식산수를 벗어나 한국의 산야를 소재로 전통산수의 맥을 확립했다. 「청년 심전」이라 불릴 정도로 심전의 총애를 받은 청전은 선전 연10회 특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사경산수의 전형을 완성해 갔다.

또 북화계통의 인물과 화조묘사에 뛰어난 역량을 보인 이당은 3세대작가를 탄생시키는 큰 모태가 됐다. 1936년에 출범한 후소회멤버인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현초 이유태, 심원 조중현 등 8명이 주요 제자이다. 운보는 홍익대와 수도여사대에서 산동 오태학, 남천 송수남 등을 가르쳤고, 월전은 심산과 함께 서울대에서 람정 박노수, 산정 서세옥, 일랑 이종상 등을 키워냈다.

서예가 소남 이희수―해강 김규진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문인화를 바탕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맥으로 평가받는다. 소남의 외조카인 해강은 중국과 일본유학후 귀국, 영친왕에게 글씨를 가르칠 만큼 문인화부문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1915년 설립한 해강서화연구회에서 배출한 제자중에는 고암 이응로, 설해 민택기, 청강 김영기(해강의 아들) 등이 돋보였다. 특히 해강의 집에서 잡일을 거들며 그림을 배운 고암은 전통 문인화를 현대적 회화기법으로 재구성, 한국화의 영역을 넓힌 대가. 그는 50년대후반 대나무그림의 추상화를 시도한 이후 60년대의 발묵(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수법)추상, 70년대의 문자추상과 인간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19세기말 호남지방에서 소치 허 연을 중심으로 형성된 운림산방의 맥은 중국 남종화산수의 전통을 토대로 국내 남도화단의 문을 열었다. 추사의 제자인 소치는 시, 서, 화의 삼절로 추사로부터 『압록강 이동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는 칭찬을 받았다. 소치의 남화정신은 미산 허형을 거쳐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에 와서 크게 번창했다. 고답적인 정신미의 구현을 고수한 의재는 기교에 앞서 뜻을 존중하는 소치의 「작대기 산수」 화법을 그대로 따랐다. 반면 미산의 아들인 남농은 색채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화면 전체에서 대비적인 효과를 추구함으로써 남화전통에서 이탈, 새로운 맥을 구축했다. 의재의 화맥은 38년 발족한 광주의 연진회를 통해 동강 정운면과 풍곡 성재휴 등으로 이어졌고, 남농의 화맥은 46년 세운 남화연구원출신의 아산 조방원 등으로 전수돼 남도화단의 주류가 됐다.

오늘날 한국화는 전통단절의 위기를 맞으면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도제식 교육과는 달리 미술대학에서 이루어지는 4년간의 짧은 교육기간으로는 교수와 학생이 정신적 교감을 이룰 수 없는데다, 학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전통산수보다는 추상화나 설치미술쪽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단에서 한국회화가 인정받으려면 전통을 바탕으로 한 고유의 미감을 찾아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전수천씨의 작품은 좋은 사례이다. 1,500여년의 찬란한 회화적 전통을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을 때에만 한국화가 살아 남고 국내화단이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겨준 것이다.

◎한국화단의 큰 줄기 후소회/이당 김은호의 제자들이 1936년 결성/김기창·장우성·이유태 등 100여명 배출

1936년 서울 종로 이당의 사랑방 낙청헌에서 결성된 후소회(회장 김기창)는 근대한국화의 가장 큰 줄기를 이어온 국내 최초의 한국화가모임이다. 창립자들은 백윤문 장덕 조중현 정홍거(이상 작고) 김기창 장우성 한유동 이유태등 청년화가 8명. 후소회라는 명칭은 이당과 친분이 있던 위당 정인보가 논어에 나오는 「회사후소·깨끗한 정신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라는 말에서 붙여주었다.

후소회는 발족 10개월만인 1936년 10월 첫 동문전이후 2∼3년마다 회원전을 열었다. 이당의 지도를 받은 회원들은 조선미술전람회(선전)등 공모전을 휩쓸었다. 42년 선전에서는 입선작 60점 가운데 최고상과 특선 1점을 포함해 21점을 차지했다. 후소회는 지난해까지 22차례의 회원전을 가졌고 100여명의 회원을 배출했다. 예술원회원도 3명(월전 현초 운보) 포함돼 있다.

현재회원은 이당의 1·2대 제자들과 후소회공모전(84∼90년)을 통해 뽑은 작가등 25명. 후소회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5월16∼26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후소회창립 60주년기념전―후소회의 조망과 미래」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에서는 ▲창립회원과 작고작가작품전 ▲회원과 원로·중진작가초대전 ▲후소회 공모전입상초청전등으로 나누어 100여명의 작품을 선보인다.<최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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