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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약관」(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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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약관」(프리즘)

입력
1996.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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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계약을 체결하거나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거래조건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약관」이 따라다닌다. 일반소비자로서는 글자도 깨알같고 어디 붙어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아 다 읽어보기가 쉽지 않다. 또 기업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있는 경우가 많아 분쟁이 생기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기 일쑤다. 얼마전 미국에서는 거꾸로 소비자의 일방적인 약관에 기업이 꼼짝없이 당한 일이 있었다.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로버트 베켄씨는 컴퓨터제조업체 탠디사 계열 체인점 「컴퓨터시티」에서 35달러짜리 소프트웨어관련 책을 한권샀다. 자신이 지불한 가계수표에 적힌 주소를 종업원이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을 보고 『광고물발송용 고객명단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산더미처럼 우체통에 쌓이는 「정크메일(쓸모없는 우편물)」에 진저리가 나있었던 것이다.

종업원의 대답만으로는 미덥지가 않아 수표뒷면에 즉석에서 「약관」을 적어넣었다. 「컴퓨터시티는 로버트 베켄의 이름을 고객명단에 올리지 않을것에 동의함. 약속을 어기고 우편물을 보낼시에는 1회당 1,000달러의 피해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임. 이 가계수표를 물품대금으로 받아들이는 때부터 이약관은 효력을 발휘함」

아니나 다를까 얼마뒤부터 이 회사의 광고물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베켄씨는 소송의 칼을 뽑아들었다. 수표 뒷면에 멋대로 적어넣은 「약관」을 근거로 싸움을 걸어온 당돌한 소비자로 인해 대기업 탠디사가 얼마나 황당해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 그러나 소액심판 담당판사는 탠디사에게 보상금과 소송비용 1,021달러를 지불하라고 판결, 베켄씨의 손을 들어줬다.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약관을 불합리하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 판결요지였다.

이후 모든 대금지불용 가계수표에 약관을 적어넣고 있다는 베켄씨는 약관작성법을 책으로 펴내 「소비자의 약관」을 정착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기업이라는 골리앗에 날려보낸 한 소비자의 통쾌한 일타는 일방적인 약관에 멍들어온 사람들의 가슴을 조금이나마 후련하게 만들어줬다.<뉴욕=이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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