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라면 총성 한발뿐일텐데 수발 들려/러 대사 북 외교부 두번 방문 수습 시나리오”/사건현장 유일한 러 기자 보도도 계속 혼선러시아의 언론들은 50여년간에 걸친 북한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조명길하사의 망명기도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주요 방송들은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자국 특파원인 이타르 타스통신의 자하르첸코기자의 보도를 인용하여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정부의 망명허용 여부를 나름대로 전망하기도 했다.
러시아 외무부가 16일 조하사의 망명기도사건이 자살로 종결됐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일부 언론은 조하사의 자살에 의문을 표시했다. 국영 RTR방송은 15일 하오 외무부 공식발표를 보도하면서 평양주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 자살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덧붙였다. 이 방송은 15일 상오 10시30분께 10∼15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러시아 무역대표부내에 진입했으며 이와 거의 동시에 1∼2발의 총성이 들렸다면서 그가 자살했다면 총성은 단 한발로 끝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특수부대 「알파」와 같은 북한의 특수부대가 무역대표부 주변에 포진했던 것으로 미루어 정예 저격수가 그를 사살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송도 조하사의 망명기도사건을 최근들어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자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사건해결을 위해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가 북한 외교부를 두번이나 방문한 사실을 중시, 사건 종결의 시나리오가 미리 작성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같은 보도는 러시아측이 남북한 관계를 고려, 사건을 가장 원만하게 처리하는 방안으로 「자살극」을 선택했다는 일부 외교가의 관측과 맥이 통한다.
또 언론인으로 유일하게 평양의 사건현장에서 기사를 부른 이타르 타스통신 특파원은 당초 조하사가 북한당국에 인도되는 과정에서 사살됐다고 보도했었다. 이 특파원은 그로부터 4∼5시간 뒤 조하사의 자살가능성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계속 엇갈린 보도를 내보냈다. 이타르 타스통신측은 일관성이 없는 기사내용에 대해 평양주재 특파원이 여러 소식통을 인용한 탓이라고 궁색하게 답변했다.
러시아인들은 그러나 러시아정부가 조하사의 신병을 북한당국에 인도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측이 북한정부와 모스크바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조하사를 범죄자로 규정했으며 이에 따라 조하사의 신병을 북한당국에 인도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조하사 신병인도의 법적 근거는 57년 북한과 구소련이 체결한 범인인도 협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언론들은 옐친 대통령의 대선출마 선언과 공산당 당대회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른 가운데서도 조하사의 망명기도 사건을 신속하고 또 비교적 충실히 보도했다. 그러나 조하사의 자살여부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남겨 놓았다.<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