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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성혜림」60년대 북 젊은이 우상/관계자료로본 성씨영화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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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성혜림」60년대 북 젊은이 우상/관계자료로본 성씨영화인생

입력
1996.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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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등 20여편의 혁명가극·영화 출연/주로 항일투쟁역… 한국애정영화도 좋아해북한최고 실력자 김정일의 사랑을 받았지만 여자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유럽의 제3국에서 고향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는 「비운의 여인」 성혜림.

그의 「인생유전」은 바로 영화에서 출발한다. 미모의 그녀가 북에 가서 영화배우가 되었고, 김정일이 영화광이었다는 데서 성씨의 오늘은 잉태됐다.

성혜림과 영화. 성씨가 출연한 북한영화 사진첩 및 자료를 관계기관에서 입수, 성씨의 「영화 인생」을 살펴봤다. 이 책은 북한의 한 출판사가 74년에 발간한 것이다.

성씨는 월북 후 18세때 평양영화대학(5년과정)에 입학, 타고난 미모로 대학 재학때 「분계산 마을에서」라는 영화에 처음 주연을 맡았다. 이후 「인민교원」 「한 자위단원의 운명」 「백일홍」 「온정령」등 20여 편의 혁명가극·영화에 출연, 최고 인기여배우로서 주가를 높이면서 60년대 북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김정일을 만난 것은 바로 이즈음인 68년. 김은 67년 노동당선전선동부 영화예술담당과장으로 취임한 후 성씨가 소속된 조선영화예술촬영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집요하게 구애했다.

성씨가 활동할 당시 북한 영화예술의 주제는 대체로 항일무장투쟁이었다. 그가 주연을 한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혁명투쟁의 서사극. 김의 직접 지도로 백두산 창작단이 제작한 이 영화는 최고 혁명가극 「피바다」에 버금가는 대작으로 평가받았다. 영화속의 성혜림은 포근하면서도 강인한 전형적인 조선의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로 항일투사를 사랑하다 의식에 눈뜨고 결국 항일투쟁에 직접 나서는 배역이 많다.

『이모보다 한국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남한에도 몇 안될 것』이라는 조카 이한영씨의 말처럼 성씨는 김정일 못지 않은 영화광이었다.

그는 김정일과 멀어진 후 괴로움을 견디기 위해 하루에 한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이씨는 『감상적인 이모는 애정영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한국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을 보고 울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당대의 여배우에서 최고권력자의 처로, 버림을 받고, 탈출하고, 황혼의 나이에 고향을 찾는 성씨의 운명은 마치 한편의 영화이다.<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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