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 없는 현대인의 고뇌 조명/돌·물·불·나무와 인간에 대한 관찰·묘사 탁월노스탤지어는 여행자에게 찾아오는 병이다. 고향에 있더라도 망명자의 삶을 산다고 느끼는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 러시아 감독 타르코프스키의 개인적 삶의 행로에서 보자면 영화 「노스탤지어」는 예시적인 작품이며, 자신을 현대사회의 망명객처럼 여기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종종 인물들의 침묵과 내적 정열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그 결과 인물은 영혼이 외부로 드러나는 기념비적 조각처럼 바뀌게 된다. 특히 이 영화 중 주인공이 촛불을 들고 물이 빠진 호수바닥을 가로 지르는 장면에서 실제시간과 영화적 시간이 일치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원에 동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시인 고르차코프(올레그 얀코프스키 분)는 18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작곡가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는 아내와 아이의 꿈을 키우기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만 망설인다. 그런 주저 속에서 그는 이탈리아인 여자 통역 에브제니아(도미지아니 지오르다노 분)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그의 온천지역 방문에 동행한다.
온천의 물안개가 환몽처럼 부유하는 그곳에서 그는 은둔자인 광인, 도메니코에게 사로 잡힌다. 도메니코는 마을사람들에게 핵재앙에 대해 경고하고는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동상 위에서 분신한다. 고르차코프는 도메니코가 남긴 초에 불을 붙이고 두 번의 실패 뒤에 불을 꺼뜨리지 않고 호수를 건너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는 꿈과 현실의 불분명한 구분처럼 신앙심과 광기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면서 종교적 경험과 희생, 복종이 없다면 과연 우리에게 예비된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의 질문형식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러나 돌 물 불 나무 빛 인간 등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관찰과 묘사는 『타르코프스키 작품은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관념주의적 영화』라고 쉽게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그의 영화는 귀소할수 없는 고통을 움소하면서, 귀소할 곳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사회와 귀환을 가로막는 힘에 대항하는 제의이다.<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교수>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