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 일간지에 「서울대 폐교론」이 실렸다. 폐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대학원대학으로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가 덧붙여져 있었다. 내부인으로서 그 견해를 반박하는 것이 조금 어줍잖기는 하지만, 정부주도의 교육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요즘 국민들의 교육관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인 만큼 반론이 필요하다. 그러니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지방대학에서 5년동안 행복하게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우선, 하나의 전제. 나는 경쟁력이라는 말이 기업과 산업에 어울리지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므로 경쟁력으로 측정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의 궁극적 가치인 인본주의, 창의성, 이타성등은 현실생활의 장과 연결될 때 비로소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교육은 가치합리적 행위이다. 그러나 교육체계는 수단합리적 대상이다. 즉,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폐교론」의 핵심적 주장은 수단합리적 행위에서 경쟁요소를 제거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인 개인적 모티브를 없애자는 말이고 이를 과도하게 해석하면 「모티브의 균등분배」라는 사회주의적 발상과 일맥상통한다. 사회주의의 붕괴원인을 잘 인식하고 있을 터인 폐교론의 필자가 왜 이런 과도한 주장을 하는지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선, 5,000명의 승자를 위한 잔치가 넉넉 잡아 90만명의 불쾌한 열등감과 맞바꿔지고, 5억원의 프리미엄이 부당하게 부여되고 있으며, 허욕과 살인적 입시경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러나,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만 질문해 보자. 지극히 가난한 어떤 학생에게 열려진 유일한 성공의 창구는 무엇인가? 요즘은 조금 달라졌지만, 서울대 입학생의 계층분포를 보면 전통적으로 중하위층이 많았다. 부유하지만 게으른 어떤 학생이 서울대 밖에서 갖게 되는 불쾌한 열등감은 오히려 신선한 자극제이다. 사회성원이 합의한 정당한 경쟁기제를 통과한 승자에게 주어지는 프리미엄 역시 정당한 보상이다. 5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의 프리미엄이 주어져도 그것은 사회질서의 문제이지 서울대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프리미엄은 사회발전의 속도에 비례하여 작아지고 있다. 살신성인의 노력을 해서라도 엘리트군에 합류하고자 한다면 그런 선택의 자유는 주어져야 한다. 허욕은 비싼 과외를 불사하는 상류계층의 생활양식의 문제이지 세계화시대에 수월성을 향한 욕심은 결코 헛된 욕망이 아니다.
○입시는 신성계약
학력주의가 낳고 있는 사회적 병폐를 간과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서울대를 그런 병폐의 주범으로 간주하는 것은 국가적 자산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한국의 지배엘리트에 대한 그간의 불신감이 이런 등식을 은연중에 우리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또는 패자의 심리적 보상행위일 수도 있다. 십분 이해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히 해두자. 한국사회의 합리성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선거도 아니고 대학입시라는 사실을. 그동안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던 학력주의 대학입시는 평등주의가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의와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최소한의 합의기제이다. 미국처럼 대입적성검사(SAT)점수 외에 여러 가지 다른 기준으로 명문대학의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면 한국의 법정은 행정소송으로 가득찰 것이다. 아직, 입학시험은 사회성원이 합의한 신성한 계약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약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계약을 갱신할 권리가 우리들에게 있다.
그러나, 입시에서 「경쟁」요소를 제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재를 사회의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가장 기본적 기준이고, 지식의 평균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기제이며, 우리 사회에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올 창조적 소수를 선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슘페터의 말대로, 사회는 혁신을 만드는 창조적 소수에 의하여 발전하며 이들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정의론자인 롤즈가 말하는 「공정성」이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패자의 손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패자와의 보상의 갭이 극도로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크기의 조절은 정부와 사회성원이 논의할 일이다.
○상처를 내기전에
이런 문제는 정부의 교육개혁안에도 발견된다. 경쟁을 분산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교육개혁안은 경쟁의 승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치게 취약하다. 승리를 향한 경쟁모티브가 약한 국가는 발전할 수 없다. 국민들이 시달려온 살인경쟁은 경쟁궤도를 여러 개로 분산시키면 해결 가능하다. 방법은 여럿이다. 시달림의 고통 때문에 한국의 교육제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영국과 프랑스가 한국의 교육제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이때에 우리는 우리가 배양해온 추진력의 뇌관을 왜 애써 제거하려 하는지 안타깝다. 서울대는 국민들이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온 귀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이것에 상처를 내기 전에 더욱 소중하게 다루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서울대교수·사회학>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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