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치료외엔 거의 두문불출 상태/아파트 경비원조차 성씨자매 몰라/갇힌생활 압박감… 아들 김정남면회 유일한 낙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59)에게 모스크바 생활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귀양살이」나 다름없었다. 성씨가 본격적으로 모스크바에 장기 체류하기 시작한 것은 89년말께였지만 그 이전인 80년대 초부터도 신병치료겸 여행차 평양과 모스크바를 몇차례씩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성씨는 그러나 단기 체류를 포함, 모스크바에서 지낸 지난 10여년 세월을 은둔하다시피하며 외로운 생활로 보내야 했다. 이따금 모스크바 병원을 드나들었고 모스크바를 떠나 수차례 외유도 했지만 언니 혜랑씨(61)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김정일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성씨가 모스크바를 탈출하기 전 마지막 5년간을 보낸 바빌로바가 85번지 외교관 전용아파트(우페데카)의 경비원들 조차 그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파트 경비원들은『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온 40대 여자(성씨와 함께 탈출한 수행원 명순이 아줌마로 추정)를 간혹 목격한 적이 있으나 성씨 자매 나이의 북한 여자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3층에 함께 살고 있는 인도인 산지씨(32·인도대사관 근무)도 『이곳으로 이사온 지 5개월가량 되었으나 50∼60대 여성은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부인과 4살배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문입구에 실내화가 놓여 있지 않았으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면서 『언제부터인가 실내화가 보이지 않아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난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성씨에게 유일한 낙은 평양에서 어머니를 보러 나오는 아들 김정남을 만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과도 바깥 나들이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모스크바에 머물 때 지금은 문을 닫은 메즈두나로드나야 호텔 (일명 소빈센터)내 카지노「포천」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95년초 모스크바의 카지노업계에서는 북한의 고위층 자제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포천에서 거의 매일 거액을 날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 소식통은 『거액을 날린 젊은이는 어머니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온 김정남이며 이 때문에 성씨가 속상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성씨가 모스크바를 최초로 방문한 것은 73년으로 무슨 목적이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성씨는 그후 김정일이 집무실 타자수 김영숙을 총애한데 따른 충격으로 심신쇠약증세에 시달리면서 80년대초부터 치료를 위해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기 시작했다. 주위에 따르면 성씨는 구소련 붕괴전까지 꾸준히 모스크바의 종합병원을 드나들며 신병 치료를 받았다. 성씨는 또 91년이래 매년 한 두번씩 모스크바를 떠나 스위스의 별장등지로 여행을 다녀 왔으며 특히 지난해에는 감시인겸 경호원인 최준덕 러시아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을 동행하지 않고 여행을 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그가 당초에는 소련공산당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중앙병원서 치료를 받았으나 91년말 공산당이 불법화된 후 옥차브리스키야 광장인근의 우페테카 병원등 여러병원을 전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앙병원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심장질환으로 입원했던 곳으로 구소련공산당 고위간부 전용병원이었다.
성씨는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아파트에만 갇혀있어야 했던 모스크바 생활에 정신적 압박을 느껴왔다. 물론 자신을 북한에서 더이상 생활할 수 없게 만든 김정일의 현처 고영희에 대한 분노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성씨가 모스크바에서 장기체류에 들어간 것은 바빌로바가 85번지로 옮기기 1년전인 89년께. 북한대사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노보체브스카야가에 있는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무기모) 맞은편 아파트촌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북한당국의 삼엄한 감시 아래 약 1년간 거주했으며 소련공산당으로부터 상당한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90년말 바빌로바가의 외교관 전용아파트로 옮긴 것은 일본인들 속에 섞여 살 경우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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