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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남매 유복한 어린시절”/혜림·혜랑씨 월북전 서울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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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남매 유복한 어린시절”/혜림·혜랑씨 월북전 서울생활사

입력
199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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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이는 상냥 혜랑은 활달”/당시 급우들 학교생활 회고/언니혜랑은 소문난 수재,가정교사탓 좌익물들어/부모 일본유학 엘리트… 아버지는 여운형과 친분북한 최고권력의 바로 곁에서 영화를 누리다 6순이 다 되어 고향땅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고 있는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와 언니 혜랑씨.

서울에서 태어나 월북했다 모스크바를 거쳐 다시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오기를 바라는 이들 자매의 인생유전은 분단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들 자매는 서울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취재진이 14일 자매가 다녔던 학교와 당시 이들을 기억하던 사람들을 탐문한 결과 이들은 가정교사까지 두고 공부할 만큼 넉넉한 집안에서 부러움 없이 자랐다.

당시의 학교 급우들은 혜랑씨는 매우 밝고 활달했던 것에 반해 혜림씨는 언니만큼 활달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혜림씨가 월북후 영화배우가 되고 김정일의 처가 된 것을 매우 뜻밖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혜림씨를 기억하고 있는 학교 급우들은 『얼굴이 예쁘고 상냥하던 그 애가 김정일의 전처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놀라워 했다. 이들은 『혜림이가 하루빨리 서울에 왔으면 좋겠다』면서 『아직도 그 귀여운 모습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매가 태어난 곳은 서울 종로구 계동. 아버지 성유경씨(82년 사망)는 경남 창녕군 대지면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외국어전문학교(일본 외국어대학 전신)에서 공부한 엘리트였고 어머니 김원주씨(94년 사망)도 일본고등잠사전문학교를 마친 당시의 신여성이었다.

아버지 성씨는 고향인 창녕에 본부인을 둔 채 서울로 올라와 종로에 「백합원」이라는 양식집을 경영했고 여기서 김씨와 만나 재혼했다. 「백합원」의 원래 주인은 몽양 여운형으로 성씨가 몽양과 이웃에 살면서 친분을 쌓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

50년 9월28일 국군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면서 아버지 성씨가 자매를 데리고 월북했을 때 혜랑씨는 이화여고에, 혜림씨는 풍문여중에 다니고 있었다. 월북후 혜림씨는 평양국립영화연극대를 나와 영화배우가 됐고 혜랑씨는 김일성대 물리수학부를 졸업하고 평성과학원 연구원이 됐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조용했던 혜림씨와는 달리 언니 혜랑씨는 어린시절부터 총명함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오빠 일기씨는 서울사대부국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혜랑씨가 남로당 지도자 이강국의 딸이었던 이숙재와 함께 가장 빼어났던 졸업생으로 입에 오르내렸다고 기억했다.

일기씨는 또 서울생활 당시 아버지 성씨뿐 아니라 두 여동생들도 다른 엘리트 학생들처럼 한때 좌익사상에 빠졌던 것으로 회고했다. 여기에는 경성사범학교의 수재로 불렸던 당시 가정교사 조모씨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몽양과 가까이 지냈던 아버지 성씨는 해방 후에 남로당에 입당, 중앙위원 재정부장으로 일했다. 성씨는 아들 일기씨가 월북하자마자 좌익활동혐의로 체포돼 1년동안 옥살이를 하다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온 뒤 풀려났다.<김관명·윤태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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