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많은 건물입구에는 금연과 함께 「구걸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그만큼 걸인들이 득실거린다는 반증이다. 실제 뉴욕등 미국 대도시에서는 누더기를 걸친 거지와 부랑자들을 매일 접하게 된다. 시 당국은 해가지면 이들을 임시거처로 옮긴뒤 아침이면 각자의 「근무지」에 풀어놓는다.이들의 구걸행각은 가지각색이다. 지나가는 차 유리창을 닦아주거나 혼잡한 도심지에서 길을 가르쳐 준뒤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봉사형이 있는가 하면, 「한국사람은 매우 관대하다」는 등 상대방을 치켜세운뒤 돈을 뜯어내는 반협박형도 있다.
또 개나 고양이등 애완동물을 끌고 다니며 「불쌍한 동물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읍소형, 취객에게 택시를 잡아주는 애교형도 있다.
이들을 매일 대하다 보면 면역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떼로 몰려와 담배와 돈을 요구할 때는 귀찮은 건 물론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게 된다. 행정당국도 이들의 처리를 놓고 머리를 싸맬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문을 닫은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은 이들 거지와 부랑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대표적 케이스다.
이들은 화장실을 빨래터와 목욕탕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일부 장소는 아예 자기네 구역으로 점거하기도 했다.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출입자를 제한할 수 없어 다른 도시의 사정도 비슷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서관에서의 목욕을 금하고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지만 이도 여의치 않다. 「지독한 악취와 위협적인 시선」을 이유로 도서관에서 쫓겨난 부랑자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캔자스시티의 한 거지는 구걸을 금지하는 시 조례가 헌법이 보장한 집회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최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45세의 이 거지는 구걸이라는 용어대신 12세부터 자선을 요청해왔다며 『강도처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를 단속할 근거가 무엇이냐』고 항변한다.
가난구제는 임금님도 하기 힘들다지만 일자리가 제법 넘치는 최고 부자나라에서 멀쩡한 거지들이 활보하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뉴욕=이종수특파원>뉴욕=이종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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