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이후 사실상 모스크바 「귀양」/언니 “고영희가 우리 잡아먹으려”/어머니 사망·조카통화도 계기돼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 일행의 모스크바 탈출 및 잠적은 김정일 주변 여인들의 견제와 어머니 김원주씨의 사망(94년)에 따른 심적 허탈감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성씨와 같이 생활하던 언니 혜랑씨(61)가, 귀순해 서울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 이한영씨(36)와 지난해 10월 전화통화를 하게 됨으로써 마음을 굳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성씨는 지난 73년 처음 모스크바로 갔다. 김정일이 집무실 타자수였던 김영숙을 총애하고 딸까지 낳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심신쇠약증세에 시달리면서 치료 겸 요양차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고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씨는 82년 이후에는 김정일의 동거녀인 고영희의 견제로 주로 모스크바에 머무르며「귀양」생활을 해야만 했다. 김정일은 이때 성씨의 보호자 겸 말동무로 성씨의 언니 혜랑씨를 모스크바에 보냈고 이때 혜랑씨의 딸 남옥씨(30)도 동행케 했다. 혜랑씨의 아들 한영씨도 당시 모스크바 유학중이었으나 곧 귀순했다.
김정일은 성씨에게 아파트 3층을 통째로 전세로 구입해 줬고 자신의 평양공관 요리사와 하녀 운전사까지 보내 시중을 들게 하는 등 상당한 배려를 했다. 또 스위스 제네바에 2백만 달러짜리 고급주택을 별장으로 마련해 줬다고 한다. 성씨는 김정일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으며 생활했으나 고영희가 최근 해외공관원 등을 통해 자신을 비방하고 매달 30 상자씩 제공되던 쌀 고추장 된장 생수 등 부식물마저 수행원의 조그만 실수로 끊겨버리자 더욱 심적 타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어머니가 94년 타계하면서 병세도 심해진 상태였고 지난해 10월에는 이한영씨와 혜랑씨의 국제전화가 이뤄졌다. 혜랑씨는 아들 이씨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자 『볼 수 있다. 곧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혜랑씨는 또 한영씨가 『엄마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가겠다』고 하자 『기다려라. 지금 내가 시도중』이라고 말해 동생인 혜림씨와의 공동탈출 의도를 시사했다. 혜랑씨는 고영희가 동생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혜랑씨는 『방치코(고영희의 별명)의 세력이 커져서 우리 자매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모(혜림씨)의 병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씨 자매와 이한영씨의 통화후 이번에는 역시 한국에 살고 있는 친오빠 성일기씨(64)가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성일기씨는 6·25 당시 남한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53년 체포돼 전향했었다. 이때 혜랑씨는 오빠에게 『평양의 딸(남옥)을 데려와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평양에서 설(신정)을 쇠라는 김정일의 요청에 따라 12월쯤 평양에 들어가 설을 쇠고 내년(96년) 1월 20일께 남옥이를 데리고 나와 1월 말에 모스크바를 떠나 제3국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김병찬기자>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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