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던 사람들은 졸업하고 그 뒤를 이어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시기가 왔다. 교육에 대한 정열에서는 남에게 뒤지기를 거부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졸업과 입학은 비슷한 시기에 있는 유럽의 카니발만큼이나 큰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정열에 걸맞은 대책이 전혀 없는 교육행위라는 것이 카니발이나 다름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올해도 지난 해들과 다름없이 수많은 젊은 성악인들이 학교 문을 나선다. 그들을 바라보며 공연담당자로서 안타까운 느낌을 갖는 것도 이전과 마찬가지다. 정열과 대책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관객에 부응할 성악인을 배출하는 교육시스템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오페라관행을 보면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오페라단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음악대학이라면 2∼3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오페라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학교 체면에 맞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것도 능력에 비해 호화스럽게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학생이든 아니든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한 마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과연 무대에 오르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반드시 오페라 스쿨은 아니더라도 오페라에 대한 기초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의 어느 음악대학에도 없다. 그런데도 그토록 오페라에 대한 정열들을 갖고 있으니 기이하다는 것이다. 마치 방아쇠도 당겨보지 못한 사람이 신체검사만 받고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목소리」만 가진 사람들이 무작정 무대로 나간다.
무대에 오른 즉시 그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버리는데도 스스로는 모르니 객석에서 더욱 가슴 아플 수 밖에 없다. 목소리란 과연 무엇인가.
상대방의 가슴에 전달할 그 어떤 것을 담는 그릇 아닌가. 무엇을 담아야 할 지를 모르니 무슨 전달이 되겠는가. 외국노래가 좋다고 그것을 배우면서 자기 목소리로 불러지는 것의 말뜻은 전혀 모르고 있다.
올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또 수많은 사람들이 외국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무엇을 취하려면 「도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문화배경을 익히느라고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약간의 성공 가능성은 엿볼 수 있다.
나머지 다수에게는 차라리 카니발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카니발은 적어도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이고 또 오페라의 뿌리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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