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 탈출소식에 “무사하길…”/작년 12월 모스크바서 혜랑이와 짧은 만남/한국갈 경우 안전문제 등 캐물어/입원중이던 혜림과는 「전화해후」/“일추진중 함부로 말할 계제 아니다”모스크바에서 잠적해 서방으로 탈출한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59)의 친오빠 성일기씨(64·서울 은평구 갈현1동)는 13일 『하루 빨리 서울에서 동생들의 무사한 모습을 보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씨는 그러나 『지금은 일이 진행중이므로 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등을 함부로 말할 계제가 아니다』며 『전담기관에서 최대한 빨리 일을 추진중이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말해 혜림씨 혜랑씨 자매의 한국망명이 교섭중임을 내비쳤다.
성씨는 지난해 12월 초 부인 장영호씨(63)에게도 비밀로 한 채 46년 전에 헤어진 동생 혜랑씨와 혜림씨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 성씨는 모스크바 도착 즉시 혜랑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혜랑씨는 『50년동안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니 양복 상의 호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라』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1시간 뒤인 새벽 5시께 모스크바 코스모스 호텔 로비에서 반백이 된 두 남매는 감격의 해후를 했다. 각자 그리움으로 보낸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두시간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함께 모여 옛날처럼 살아보자』라는 오빠의 말에 혜랑씨는 『혜림이는 수행원들이 있어 아직까지 행동이 부자유스럽고 건강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라며 못내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혜랑씨는 한국에 갈 경우의 처우와 안전문제 등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혜림이가 보고싶다는 오빠의 요청에 혜랑씨는 동생이 입원한 병실로 전화를 걸어줬다. 혜림씨는 『보고 싶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 수화기를 들고 있던 성씨도, 옆에서 듣고 있던 혜랑씨도 그저 말 없이 울 수 밖에 없었다.
첫만남 후 혜랑씨를 돌려보낸 성씨는 호텔방에서 하염없이 보드카만 마셨다. 다음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혜랑씨는 『부모 사진이 없어 제삿상에도 사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오빠에게 말없이 오래전 세상을 뜬 부친과 94년 작고한 어머니의 사진 2장을 건넸다.
성씨 가족의 비극은 아버지 성유경씨가 48년 일기씨만 서울에 남긴 채 어머니 김원주씨와 3녀(혜랑, 혜림, 화자)를 데리고 월북하면서 시작됐다. 성씨는 49년 아버지를 뒤쫓아 의거 월북, 강동정치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6·25 하루 전날 남파돼 경남·북 일대에서 3년 넘게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53년 12월 체포됐으나 김창룡 당시 특무대장의 「배려」로 옥고를 치르지 않고 풀려났다.
성씨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사상이 달라 월북했지만 풀려난 뒤에는 남한생활에 적응키 위해 노력했었다』면서 『그래서 귀순한 조카 한영이에게도 「착실하게 살라」며 늘 야단을 쳐왔다』고 말했다.
성씨는 그동안 원단수출업 등 여러가지 사업을 하다 10여년전 실패한 뒤 지금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독서로 소일하고 있으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성씨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동생 혜림이가 북에서 영화배우를 했기 때문에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김정일과 인연이 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김관명기자>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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