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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원부산대교수·헌법학(나의 지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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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원부산대교수·헌법학(나의 지면평)

입력
1996.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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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원전·돼지기름 공신력 실추/심층보도로 문제점지적 돋보여2월 들어 보도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공적기관의 권위와 공신력을 실추시키고 있다. 영광원전 5·6호기 건설허가 및 취소에서부터 보건복지부의 돼지기름 파동, 중앙선관위의 통합선거법 해석과 집단 반발, 주세법 관련비리와 5공신당설에 대한 검찰의 태도, 청와대면담설을 둘러싼 신한국당의 고소취하와 번복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중앙선관위와 검찰, 정치권 등에서 골고루 그것도 겨우 일주일이나 하루사이에 스스로의 결정이나 태도를 바꿨다.

물론 각 사안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모두를 동일선상에서 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공적기관의 의사결정이 치밀하고 사려깊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원전 추가건설 반대」를 공약하고 군의회에서도 공약이행을 공언했던 영광군수가 느닷없이 원전건설을 허가한 뒤 주민들의 집단반발이 있자 8일만에 이를 다시 취소한 것이다. 중국음식점 등 대부분의 시중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돼지기름이 비위생적으로 가공된 불량품이라던 보건복지부가 일주일만에 인체에 해가 없고 사용업소도 28%에 지나지 않는다고 발표해 피해입은 상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통합선거법 제86조 2항 4호에 대해 당초 지자체 행사의 전면금지라는 입장을 보였다가 서울시 구청장들이 집단반발하자 선별허용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검증되지도 않은 5공신당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확인해준 검찰이 주세법개정과 관련한 비리내사 사실에 대해서는 언론보도를 구실로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밝히는 등 상례와 어긋나는 대조적 모습을 보여 검찰정치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면담설을 부인하고 사과까지 했으니 고소를 취하하겠다며 느긋한 태도를 보이던 신한국당이 민주당의 역공세에 즉각 취하를 번복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부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일보는 특히 영광원전사건과 선거법 갈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2일자 사설과 1·2일자 해설·특집을 통해 영광군수의 무원칙과 무소신을 질타하면서 중앙―지자체의 갈등과 님비현상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8일자 「선거법 특집」과 9일자 사설에서도 선거법 갈등을 둘러싼 현안을 선관위 결정내용과 함께 심층 보도하고 공명선거를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공권력의 권위실추를 우려했다.

조금만 더 사려깊고 앞을 내다볼 수 있었더라면 스스로의 권위도 실추시키지 않고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거나 관련 종사자들에게 피해도 입히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집 고객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고 정계와 언론계 전반에 불명예의 안개를 뿌리고서도 책임있는 조치나 그에 상응하는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계에도 검은 돈이 뿌려졌다는 검찰발표는 언론의 공정성과 도덕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새해 들어 상투어가 돼 버린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가 우리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기에는 아직도 이른 것 같다. 2월 들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발등의 불끄기에 급급해 앞을 내다보는 여유와 예지가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건 하나 하나에 대한 비판과 지적만큼이나 일련의 사건 전체를 통한 거시적 안목으로 21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계기를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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