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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별세 윤치영옹/정·관계 큰 족적 현대사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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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별세 윤치영옹/정·관계 큰 족적 현대사 증인

입력
1996.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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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옥고도… 말년까지 활동 왕성 98세를 일기로 9일 타계한 동산 윤치영옹은 독립운동가로, 학자로, 정치인으로 두세기에 걸쳐 살아오면서 온갖 영욕을 맛본 현대사의 증인이었다.

 1898년 2월10일(음력) 서울에서 출생, 중앙고보(현 중앙고)와 일본 와세다(조도전)대학,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을 졸업한 동산은 1936년 YMCA부총무시절 일제와 맞서다 7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어 해방후 한국민주당(한민당)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이승만박사의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70년대 초반까지 정계와 관계를 넘나들며 요직을 두루 역임하는 화려한 관운을 누렸다. 5선의원(제헌, 2, 3, 6, 7대)에 초대 내무장관, 공화당 당의장 및 국회부의장, 서울특별시장, 주불대사를 거친 그의 정치역정에는 좌절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동산은 특히 제헌의원과 초대 내무장관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과 발전에 나름의 족적을 남겼으며 5·16쿠데타로 박정희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김종필현자민련총재의 권유로 공화당에 입당해 두차례나 당의장에 오르는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공직재임시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않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적지않은 화제를 뿌린 주인공이기도 했다. 63년 야당대통령후보들을 겨냥, 『만약 구정치인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몇달안에 혁명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폭탄발언으로 정가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동산은 정계은퇴후에도 남다른 건강관리로 92년까지 서울시직원들의 모임인 서울시우회장과 안중근의사 숭모회장을 맡아 왕성한 사회활동을 계속하는등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또 93년에는 자신의 인생행로와 한국정치사의 이면을 담은 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를 출간했고 20년대 미국유학시절부터 수집해온 장서 3,118권과 제헌국회 개헌기념사진등 기념물 121점을 국회도서관에 기증, 「마지막 자취」를 남겼다.<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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