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관계에 발들여 놓았던 사람들은 그 세계를 외면하기 힘든 것 같다. 밖에서 보기에는 아수라장 같거나, 자기소신을 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는데,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만족이 있는 모양이다.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낙선을 거듭했던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막상 낙선을 하면 500볼트 정도로 힘차게 들어오던 전기가 딱 끊어진 것같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고, 날이 밝아도 갈 곳이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끊어진다. 그 무력감과 소외감을 못이겨 다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정치는 아편」이란 말을 실감하곤 한다』
한 정치인은 최근 정당의 출마권유를 받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나이가 이제 육십이 가까운데, 지금까지 정치에 발들여 놓지 않았던 사람이 왜 굳이 이 힘든 세계로 오려는가. 출마 안하는게 좋겠네』
이런 이야기들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순수한 사명감으로, 또 일 자체가 좋아서, 어려움을 감수하며 정계·관계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치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기 보다는 능력과 이상을 갖춘 사람들이 들어가 그 세계를 바꾸도록 북돋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과 정치지망생들은 인물찾기와 공천얻기로 치열하게 뛰고 있다. 모두가 사활을 걸고 뛰다보니 최소한의 원칙이나 의리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다. 원칙이 있다면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 의리가 있다면 「높은 사람」의 입당 간청을 어떻게 끝까지 거절하느냐는 정도다.
이런 와중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지난 정권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분들중에는 비교적 좋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이 있고, 그 무난한 인상때문에 영입대상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보필했던 대통령들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그 대통령들을 「청산」하려는 정당에 들어가 개혁을 외친다는 것은 아무리 정국안정을 돕겠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국민앞에서 취할 도리가 아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과오가 없었더라도 도의적인 책임을 함께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런 자세를 통해 원로로 남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원칙에 엄격한 사람, 정치와 권력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 나아갈때와 물러갈때를 깊이 생각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전천후 불사조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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