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북한인민군이었다가 귀순했던 김형덕씨가 중국행 화물선에 몰래 타고 출국하려다 적발된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휴전선을 넘어왔던 그가 2년만에 자신이 선택했던 땅을 떠나려 했다는 점에서 동기와 이유가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제2의 이수근사건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도 한다.사실 휴전이후 80년대 중반까지 귀순자는 죽음의 땅을 탈출해온 영웅이었다. 탈출은 곧 북한이 공산독재체제이자 암흑과 지옥임을 나타낸 것이어서 국민의 반공의식고취와 대북선전을 위해 당국은 이들에게 국가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주택과 생활정착자금등 갖가지 혜택을 베풀어왔다.
하지만 80년대중반 이후, 특히 소련과 동구의 공산체제가 붕괴된 이후 탈북자·귀순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자 그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로 인식이 바뀌었다. 동기 역시 이념문제는 점차 퇴조하고 처우와 배고픔, 인권, 신분불안등 개인적·경제적인 문제가 주종을 이루었다.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도 93년6월 공포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에 의거, 1인당 약1천7백만원 상당의 생활안정 및 주택지원비의 지급과 함께 교육 및 의료지원외에 취업알선을 실시해 오고 있다. 소위 수억원상당을 주던 영웅시대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또 94년부터는 주로 벌목공출신들을 대상으로 1년기한의 기술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으나 이들의 상당수는 「왜 과거와 같은 보상금을 안주는가」하며 반발, 수업거부와 함께 한때 국회앞에서의 시위를 계획하기도 하여 국민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귀순자들의 최대의 문제는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출국을 기도했던 김씨의 경우 위장귀순후 재입북하려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20세란 어린 나이에 참혹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귀순한 이후 남한사회에 적응을 못한데다 가족이 그리웠을 수 있다. 따라서 1만4천여달러를 갖고 중국으로 갈 경우 가족 소식도 듣고 연락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귀순자, 그것도 날로 늘어나는 귀순자 문제는 사회의 큰 숙제로 부각됐다. 5백61명이나 되는 이들을 과거처럼 영웅대접할 수도 없고 일일이 관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의식교육과 기능훈련을 꾸준히 실시하고 일정기간 생활상태를 점검, 지원하는 일을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이북 5도청과 북한지역 각 군민회 등을 통한 자매결연 등으로 끈끈한 형제애로써 마음의 안정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탈북자에 대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동포애로써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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