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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과 사색가의 면모 조화(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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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과 사색가의 면모 조화(소설평)

입력
1996.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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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길의 「오해」 이선의 「마지막 오후」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런저런 장편소설들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 원재길의 「오해」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인간존재와 세상살이의 세부사항들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그러한 관찰의 결과를 기초로 해서 재미난 한 편의 드라마를 엮어내는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오해」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은 기본적으로 설화성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설화성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써 「오해」에 대한 논의를 끝내 버린다면 이 작품을 절반밖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은 그러한 설화성의 매력을 진하게 발산하는, 자못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의 얼굴이지만, 그 얼굴 아래에는 또 하나의 다른 얼굴이 분명한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요청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른 얼굴의 주인공은 인간과 인간이 자기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넘어서 참다운 관용의 정신에 기초한 만남을 이루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를 진지하게 질문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한 만남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인식으로 괴로워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 비록 참다운 관용의 정신에 기초한 만남 자체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만남의 경지에 다가서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수가 있고, 그러한 노력 속에서 의미있는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대답하는, 한 사람의 사색가이다. 「오해」라는 소설의 출판세계 속에서 이러한 사색가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저 이야기꾼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데서 다시 한 걸음을 더 나아가,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꾼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만큼이고 사색가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만큼이냐를 분명히 밝혀내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양자 중 어느 편의 무게가 더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양자가 이 소설 속에서 아주 잘 어울리며 협력하는 관계로 맺어진 결과 상당히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이야기꾼의 면모와 사색가의 면모가 잘 어울리면서 협력하는 양상은 「현대문학」 2월호에 발표된 이선의 단편 「마지막 오후」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이 작품은 단편이고 단편치고도 소품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어서 규모면에서는 「오해」와 판이하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성격과 강렬도에 있어서는 흥미로운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동하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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