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선거사상 이번 선거처럼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선거도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유능하거나 덕망이 있는 입후보자가 나왔을 경우 약간의 예외는 있었지만, 유권자가 한 표를 던지기 전에 정해야 할 일은 인물보다는 여당을 찍을까 야당을 찍을까였다. 정당들이 정치이념이나 정책의 뚜렷한 차이를 유권자에게 부각시켜가며 대결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실정치에 그럭저럭 안주하고 싶으면 여당을, 달라져야 한다고 변혁을 꿈꾸는 층은 야당을 찍게끔 돼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몇 마디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친여인지 친야인지 정도는 쉽게 드러나게 돼 있었다. 또 저 사람은 보수파다, 그 사람은 개혁파다는 식의 다른 표현을 쓸 때도 보수는 으레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으로, 개혁파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간주되어 여야의 개념과 같은 것이었다.그러나 지금의 정치현실은 집권당이 개혁을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야의 입지가 좁아져서 그런지 중구난방이어서 도무지 그 정당이 있어야 하는 특색을 알아낼 수가 없다. 당의 명칭도 자주 바뀌고 길어서 그걸 외느니 누구를 중심으로 뭉쳤다는 식의 김영삼당, 김대중당, 김종필당, 그리고 3김청산당으로 부르는 쪽이 그나마 개별성을 인식하기 편하다.
○하루아침에 변신
정책보다 사람을 보고 뭉친 모양새가 정당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거라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신빙성이 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김영삼쪽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김대중당에 가 있기도 하고, 김대중당인 줄 만천하가 알고 있던 사람이 버젓이 김종필당에 가 있기도 하다. 집권당을 공격하는데 명수여서 다른건 몰라도 야당을 하리라는 것 하나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여당에 영입되는가 하면, 여당 내에서도 벌써 개혁의 대상이었어야 할, 유신시대나 군사정권시대의 충신들이 적지 않아서 저 사람은 무슨 비결로 저렇게 명이 길까, 그 사람뿐 아니라 개혁이라는 것까지 비아냥거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무지개빛깔을 두루 거치는 변신을 거듭하여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다 그 공천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려고 그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 오죽하면 입시대목이 지난 점집엔 어느 당에 줄을 대야 공천을 받을 수 있나를 물으러 오는 정치인으로 더 큰 대목을 맞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겠는가. 소신지원보다는 붙고 보자는 지원은 실력이 달리는 입시생의 비애에 그치나, 그런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기고 뼛골 빠지게 일한 세금으로 부양해야 하는 것은 유권자의 해묵은, 그리고도 끝이 안 보이는 비애임을 어이하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은 정당이 없다보니 인물위주로 뽑을 수밖에 없을테고, 이왕이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낯익은 얼굴한테 한 표를 던질 것을 예상한 각 정당의 인기인 유치작전도 이번 선거의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평소에도 정치에 뜻을 두고 은근히 그 방면으로 식견을 쌓아왔다면 이번 기회에 소신을 펴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만, 단지 연예계에서 얻은 인기만을 믿고 출마한다는 것은 팬들을 떠보고 정치에는 이용당하는 꼴밖에 안될 것이다.
또 인기도 얻을 만큼 얻고 돈도 벌 만큼 번 연예인이 연예계를 예전 딴따라판 정도로 비하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신분상승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 그건 더더욱 말리고 싶은 착각이다. 보라. 우리에게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자랑스러워 할 원로정치가가 어디 있나. 그 썰렁하니 황폐한 고장과 김동원, 백성희등 깨끗하고 당당하게 외길을 걸어온 원로배우들이 의젓하게 좌정한 연예계와, 어느 쪽이 더 품격이 높다 할 것이며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할 것인가.
○서태지가 남긴 것
비록 짧은 동안이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몰고 온, 또 남기고 간 열기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고등학생처럼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곧잘 서태지의 몸짓을 흉내냈던 초등학교 오학년짜리 손자가 있어, 그 애도 그들의 은퇴를 많이 섭섭해 하길래 넌 그 형아들이 왜 좋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애의 대답인즉 가사가 방황을 하지 않아서 좋다는 거였다. 무슨 뜻인지 잘 못 알아듣고 캐물은 결과 기존의 노래말의 무의미하고 아리송하고 일관성 없는 공허한 이미지의 나열과는 반대되는, 현실감과 메시지가 있는 가사를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십대들이 그애들이 창출한 멜로디와 율동에 맞춰 자신의 젊음과 스트레스를 발산시키는 희열 때문에만 그 애들을 그렇게 극성맞게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것도 물론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겁없이 당돌하고 때로는 야유와 풍자로 가득찬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따위 가사를 온 몸을 폭발시키듯이 절규하고 싶은 거였다. 이렇듯 당차고 솔직한 세대가 빠른 속도로 유권자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3김시대에서 헤매고 있어야 하나. 벌써 언제적 3김시댄가. 지조가 없으려면 새롭기라도 좀 하든지. 끊임없이 바꿔치기하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 정말이지 싫다.<작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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