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96년 2월 목표 「간판」 물색설 나돌아/2천억마련 계획까지… 「비자금」에 무산전두환전대통령이 신당창당을 위해 8백80억원의 비자금을 정치권과 언론계등 각계 인사에 건넸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5공신당의 실체가 또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씨는 90년 12월 백담사에서 2년여동안 유배생활을 마치고 하산한 뒤부터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인식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씨는 5공청산과정에 이어 6공정권이 3당합당을 추진하자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신당을 결성하겠다는 의중을 핵심측근에게 비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3당합당 소식을 백담사에서 전해듣고 『어떻게 만든 당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노태우대통령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 측근이 그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후 그는 장세동전안기부장, 이양우변호사등 핵심측근을 내세워 상당수 민정계 의원을 관리해 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5공인사를 중심으로 민정당복원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소문만 나돌았던 5공신당설은 설로 끝났고 그후 권정달전의원등 5공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신당설도 역시 14대총선에서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전씨는 이에 앞서 13대총선때 일부 민정당의원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한데 이어 14대총선때도 민자당의 일부 민정계의원에게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신당창당을 겨냥한 정지작업이 아니라 단순한 「5공인맥」의 관리차원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한동안 잠잠했던 5공신당설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지난 6·27지방선거 직후였다.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세력인 자민련이 약진한데다 대구·경북 및 서부경남등에서 무소속이 강세를 보였다는 사실이 연희동진영을 고무시켰다. 이때를 전후해 민자당내 5공인사 20여명이 은밀히 보수그룹을 형성했고 TK지역의 L·K전의원등은 전씨 측근과 수시로 만나 신당창당문제를 협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전씨는 측근들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보고받은뒤 『내가 전면에 나설 수야 없지 않느냐. 조금만 기다려보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은 말했다.
전씨가 신당창당을 본격적으로 구상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신당창당의 시기를 96년 2월로 정하고 신당의 「간판스타」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정가에 나돌았었다. 전씨는 당시 당대표로 5공시절 총리를 지낸 N씨와 TK지역의 원로인 S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전씨로부터 그같은 제의를 받고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전씨는 신당창당을 위해 자신과 노태우씨가 각각 1천억원씩 내 2천억원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한 관계자가 전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들이 여권핵심부에 감지됐는 지 지난해 8·15특사때 대부분 인사들이 사면·복권됐으나 장세동씨만이 제외되어 여러 억측을 낳았었다. 그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장씨가 5공신당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목을 잡아놓기 위해 사면복권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됐었다.
더욱이 지난해 8월초 서석재전총무처장관의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이 터졌고 이어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이 현실화하면서 5공신당설은 자취를 감추었다.<손태규기자>손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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