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작용」 자연풍경에 노년내면 투영「잠을 깨워주게/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비탈진 길목/억겁의 시간을 안은채/크고 작은 발자국들만 찍어/꿈길을 노젓고 있는 우리 모녀를…」(「공룡답사기」)
지질학자인 이상만씨(서울대명예교수)의 시는 화석과 암석의 옷을 입고 있다. 고희를 맞아 펴낸 두번째 시집 「풍화작용」(마을간)은 캄보디아 바삭강, 옐로스톤의 협곡, 계림(구이린)의 리강등 그가 돌아본 지구 곳곳의 자연풍경을 주로 담고 있다. 사암 삼엽충 미아석 편마암 마그마등 과학자의 눈으로라야 선별할 수 있을 시어들은 그가 오랜 과학수련을 쌓은 사람임을 알아채게 한다.
시력은 비록 짧지만 지난 생을 원숙한 눈길로 반추하려는 의지가 물씬 풍기는 시편들은 대개 유장한 역사를 안고 있는 자연과 고적에다 노년에 이른 그의 삶을 깊이 투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잊지 말아다오. 너만은 끝내/히랄다사원 떠받친 불기둥/돌과 돌 굳게 끌어안은 역암되어/우리의 사랑되거라, 세빌리아여」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우랄산맥을 넘으며 「믿었던 너도 한세상 지나면/깎이어 들판이 되고 말려니」라고 노래할 때는 허무의 정서가 배어난다. 크게 미련 남지 않도록 살아온 뒤 황혼을 맞은 시인의 엇갈리는 심경이 드러나 있다.
세상의 온갖 자연물과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의 힘 탓일까. 그 작업에서 얻었을 깨달음이 담긴 시구에서 그의 시는 가장 감동적인 인상을 남긴다. 「돌과 물이 없었던들/삶도 사랑도 없었을 것을」이라는 표현도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김범수기자>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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