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경제의 심장이라 한다. 몸이 건강하려면 우선 심장이 튼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경쟁력이 있으려면 역시 금융기관의 경쟁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경제력 기준으로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미국과 유럽연합(EU) 및 일본등 선진경제권과는 물론 비교가 되지 않을 뿐더러 같은 아시아의 닉스(신생공업국)로 불렸던 싱가포르, 홍콩 등과도 상당한 격차가 있다. 싱가포르는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의 금융센터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싱가포르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없지 않으나 정책·제도·관행 등에서 환골탈태를 하지 않는 한 생각으로밖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은행의 자율화와 세계화, 금융시장의 개방화등 금융현대화의 현안 타결에 역점을 두어 왔으나 진척의 폭과 속도가 기대만큼 넓거나 빠르지 못하다.
우리은행들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해주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자율경영에 대해 재정경제원, 은행, 주주 등 관계자들 사이에 뚜렷한 합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재정경제원은 주인이 없는 현행의 경영상태로는 경영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산업자본가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자격요건으로 「금융전업가」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은행주식 매입자금이 산업자금이나 은행대출자금이 아닌 순수개인자금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사실상 충족이 불가능한 조건이다. 정부는 이제 속뜻을 명백히 해야겠다. 정말로 「주인있는 경영」체제로 바꿀 계획이라면 「금융전업가」의 조건을 완화하든가 철폐해야 한다. 또한 주인을 찾아주지 않고 자율경영체제를 강화시켜주겠다 해도 현행 은행장 추천제도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은행장 추천제는 현직 은행장이 추천위원 9명중 대주주 대표 2명을 제외한 7명을 선임할 수 있어 구조적으로 그에게 유리하게 돼 경영능력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연임이 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은행장의 독단과 전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은행경영의 개혁을 위해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은행장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은행감독원 등 감독기관이 있기는 하나 그것으로 불충분할 뿐더러 모양새도 좋지 않다. 정부로서는 어떻든 현행 은행장 추천제도에 대해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은행장이 선임된 뒤에는 경영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합리적 자율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문민정부는 금융을 관치금융에서 자율금융으로 전환시키겠다고 천명하고 사실 과거 정권보다 경영의 자율화에 노력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와 금융환경하에서 선진경제권과 같은 금융자율화는 아직 멀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떻든 관치금융으로부터의 탈각은 이를수록 좋다. 정치·사회적 파급영향과 부담에 발이 계속 묶인다면 금융자율화는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도 경영을 잘못하면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이 실증돼야 한다. 미국등 선진경제국 은행들은 경쟁력 향상과 경영합리화를 위해 흡수·합병(M&A)은 물론 조직의 슬림화(살빼기)등 경영합리화와 파생상품의 개발·보급 등 경영기법의 선진화 및 업무의 다원화등 경영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은행들도 경영개선과 개혁에 시간·돈·노력을 나름대로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경제권보다 차원이 낮다. 지난해와 같은 호황기(9.3%성장)에도 우리 은행들은 증시의 불황으로 당기 순이익이 전년도보다 23%나 대폭 감소했다. 거꾸로 국내 진출 외국은행은 26.6%나 늘었다. 25개 일반은행중 6개 은행이 배당도 못하게 됐다. 배당은행들도 대다수가 지난해보다 배당률이 낮다. 은행주들은 이래서 천덕꾸러기가 됐다. 은행의 위상을 말해준다 하겠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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