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노태우 스캔들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뒤부터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그 많은 돈이 도대체 어디에 쓰여졌느냐는 것이다. 특히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해 온 대목은 어느 정치인에게 얼마를 주었느냐는 것이다.그러나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은 다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 오랜 수사가 계속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으니 여러가지 설과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이런 것들이 이번 4월총선을 꽤 어지럽게 만들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씨가 뿌린 돈만이 아니다. 이제는 전두환씨가 뿌린 정치자금이 파문을 몰고 올 태세다. 전씨는 그가 창당한 민정당이 합당으로 소멸하자 5공 인사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뿌렸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검찰 당국이 확실한 증거를 잡아 확인한 단계는 아니지만 전씨의 진술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검찰은 말하고 있다. 검찰이 3일 하오 밝힌 진술내용을 보면 전씨는 90년 합당후 5공 신당창당 정지작업을 위해 2백명의 정치인에게 5백억원을 주었고 금년 2월까지 「원민정당」을 만들어 4월 총선에 참여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전씨는 또 92년 14대총선때 민정계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30억원을 주었으며 89년 12월 5공비리청문회때 여야의원등에게 1백50억원을 주었다는 것이다.
전씨가 평소 5공인사들을 불러 돈을 주고 있다느니, 손이 크다느니, 5공신당을 추진하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는 널리 소문으로 퍼져 있었다. 뒤늦게 그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국민들은 「역시 그랬었구나」 하는 반응들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의 원죄를 돈으로 덮으려 했고 그 세력을 다시 재생시키려 했던 비도덕적 작태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고 있다.
노씨가 뿌린 돈에 이어 전씨가 뿌린 돈 역시 선거철을 맞아 시끄러운 쟁점으로 등장할 것은 뻔하다. 전씨가 특히 5공인사들에게 많은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공천이나 선거과정에서 그들은 불가피하게 수난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의아해 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검찰이 거증도 하지 않은 전씨의 정치자금 살포를 왜 슬쩍 흘렸느냐는 것이다. 일부 지역이나 계층에서 일고 있는 동정론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노씨 비자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정치권 사정을 심심하면 흘려놓고서는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 전씨가 털어놓은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두번째의 수수께끼로 남지 않도록 철저히 규명해서 의혹을 깨끗이 씻어 줘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