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권의 집권 여당은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한뒤 국민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 심지어는 당명까지 바꿔가면서 변화의 몸부림을 쳐왔다.민자당이란 헌 간판을 내린 것은 3당 합당체제를 무너뜨리고 구시대 정치유산을 청산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신한국당이란 새 간판을 내건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새시대 새정치를 펼쳐보겠다는 의욕의 과시였다. 그래서 당명만 바꾸는게 아니라 사람도 대폭 바꿔 명실공히 새로이 태어나겠다고 호언했다.
특히 4월 총선에 내보낼 공천후보를 인선할 때 현역 의원중 절반 이상을 새 사람으로 물갈이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특히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을 연달아 감옥으로 보내는 전격적인 사태가 벌어지자 5·6공 인사들이 대부분 교체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제는 정말 글자 그대로 신한국당이 새로 태어날 것인가 하는 기대를 부풀리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2일 하오 공식 발표된 신한국당의 공천자 명단을 보면 그런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권위주의 사고에 젖은 정치인들은 대부분 물러가고 개혁 의지에 불타는 젊고 참신한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는 역시 이상론에 치우친 무리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역대 선거사상 물갈이나 세대교체의 폭이 가장 클 것이라던 예상과는 반대로 최대가 아닌 최소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참신한 사람들이 상당수 영입된 것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선가능성이라는 현실에 부딪쳐 현역 우선이라는 안이한 선택을 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신인을 과감히 발탁하는 모험을 주저한 것이다.
개혁은 언제나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법인데 이번 공천은 개혁보다 현실 안주의 인상이 짙다. 당선 위주의 공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거는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론에만 치우쳐 패할 사람을 후보로 내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기는 방법으로 현실과의 타협이 과연 효과적인지 아니면 현실 타파의 용단이 옳은지는 나중에 선거결과로 판명될 것이다.
그리고 이날 발표된 명단 중에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역행되는 과거를 가진 사람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5공 출범때 언론통폐합과 탄압에 앞장섰던 사람도 있고 5공 정치의 핵심인물도 있다. 그 지역의 당선가능성을 계산한 인선이라고 보여지나 그 사람들로 인해서 신한국당 전체가 입게될 이미지 손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5대 국회는 21세기의 문턱을 내딛는 국회다. 그래서 그냥 14대의 연장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각 정당은 그러한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공천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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