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중보다 위로로 감싸줘야/기성세대 매너리즘 향한 도전 몸짓에 희열 느껴/성장기에 있을 수 있는 통과의례로 이해해야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1일 괌을 거쳐 LA로 떠남으로써 10일간에 걸친 은퇴파동은 일단락됐다. 수백명의 청소년 팬들은 잠적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3일부터 출국하는 순간까지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다니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많은 청소년들이 열광했고, 또한 다시 볼 수 없음을 슬퍼하고 있는 「서태지 신드롬」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특집을 마련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사회·심리적 분석◁
혜성처럼 나타나 X세대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은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청소년의 영혼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전문가들은 「서태지…」의 갑작스런 해체·은퇴과정에서 빚어진 청소년들의 혼란스런 반응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들은 또 『기성세대가 자녀들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백안시하고 꾸짖기 보다 이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노력이 이제 숙제로 남게됐다』고 말했다.
김동일교수(54·이화여대 사회학과)는 『10대들은 부모의 품을 벗어날 때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또래집단에서 우상을 갈구한다.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이들을 통해 대리체험하기 위해서다. 「서태지…」가 그동안 10대들의 황태자처럼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기성세대의 매너리즘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이를 통해 짜릿한 희열감을 맛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서태지…」가 그동안 선보였던 충격적인 노래가사, 자유분방한 몸!놀림, 독특한 헤어스타일등 모든 것들이 기성세대에겐 파격 그 자체였다. 머리를 땋고 물을 들였다고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10대들에겐 둘도 없는 불만의 배설구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시형박사(60·강북삼성병원 정신과)는 『10대들은 스타와 자기 둘만의 세계를 상상하고 거기에 몰입하려 한다. 기성세대의 억압에 짓눌린 청소년들에겐 「정규교육을 마치지 않은 위대한 창조자」인 「서태지…」가 자신들의 유일한 존재이유로 작용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의 은퇴는 일파만파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박사는 또 『정신적 지주요 대변자로서 삶의 전부로 여겨온 스타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10대 팬들에겐 분명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겠지만, 그 영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부모들은 성장기에 흔히 있을 수 있는 「통과의례」로 이해하고 자녀가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위로해줘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대중문화 평론가 김창남씨는 『「서태지…」의 해체·은퇴는 우리 사회의 미디어산업이 요구하는 스타상(상)과 아티스트 개인으로서의 욕구가 상충돼 빚어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이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김성호기자>김성호기자>
◎팬클럽 회원이 보는 「서태지…」/“탄탄한 음악성·팬 관리 알뜰·매너 훌륭/기성세대도 우리 나이땐 비슷했을 것”
청소년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어른들에 대해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관심과 애정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명확한 이유와 행동논리를 가지고 있다. 2일 만난 팬클럽 「또래네」 회원 최영선양(16·중3)도 그중의 한 명이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아요. 먼저 음악성이 탄탄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1∼4집 음반의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 작곡했지 않아요? 1집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면 다른 음반에서는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한 거예요. 기획력도 좋고, 팬관리도 알뜰하게 해줘요. 또 무대매너도 훌륭하거든요』
「서태지…」 팬클럽은 전국적으로 30여개이며 회원은 7만여명에 이른다. 「또래네」는 PC통신 팬클럽으로 초등학생부터 40대까지 폭넓은 계층에 걸쳐 400여명이 가입해있다. 학교에서 반장이기도 한 최양은 「또래네」 회지를 내는 작업을 맡고 있다.
『신세대의 사고가 기성세대와 같지 않다고 해서 「옳지 못한 신세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옳지 못해요. 기성세대가 우리 나이때 몰입했던 그 무엇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그것이 음악일 수 있거든요. 그곳에 몰입해 자신의 일부로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에요?』
최양은 또 『집단 히스테리 등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내리는 진단은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특히 「조직적인 자살조」 등 근거없는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어요』라며 오히려 기성세대를 걱정했다.
1일 하오 「서태지…」를 환송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김포공항에 나온 김은선양(16·중3)은 『실험성이 강하고 끊임없이 창조하는 개척정신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 10대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죠. 「서태지…」의 노랫말은 우리의 현실에서 나오니까요』라고 말했다.
친구 김경미양(16·중3)도 『어른들이 선입관으로 우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래 잘하는 가수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우리 어머니 세대에도 그런 가수가 있었고 또 팬들이 있었을 거예요』라고 주장했다.<권오현기자>권오현기자>
◎파동의 전말/어쩔수 없는 은퇴 “이젠 추억속으로”/충격과 혼란의 10대 팬들 2∼3일 지나자 체념
지난 10일 동안 어른들은 놀라운 현상을 지켜봐야 했다. 대중사회의 우상과 그에 대한 열광을 생생히 본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연한 은퇴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3일 아침부터 주로 소녀들로 이뤄진 10대팬들은 서태지가 떠나간 서대문구 연희동 집에 모여들어 『서태지』를 외치며 은퇴를 취소하라고 호소했다.
그들 중 일부는 빈 집에 남아있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휴지조각, 부엌 집기까지 기념품으로 들고 나왔다. 『정말 은퇴하면 죽어버리겠다』는 아이들의 절규가 『자살특공대가 조직됐다』는 말로 비화해 어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그후 매일 100여명이 몰려들어 슬픔을 나누며 『오빠들의 입으로 은퇴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2∼3일이 지나면서 은퇴를 기정사실화한 팬들은 『오빠들을 아름답게 보내자』며 오히려 「공인으로서 서태지의 무책임함」을 비난하는 언론을 원망하기도 했다. MBC SBS등 방송사에 몰려가 보도내용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연합은 멤버간의 불화설 등 은퇴배경에 대한 추측보도가 계속되자 지난달 24일에는 유인물을 통해 『본인들의 공식발표가 있기까지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 그들이 진심으로 은퇴를 원한다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 동안 10대들의 심리적 공황을 우려하는 소리가 잇달았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유림회관의 은퇴 기자회견 때는 소녀팬들이 『얼굴만이라도 보여달라』며 흐느껴 서태지 신드롬을 또한번 실감케 했다.
「서태지…」의 은퇴는 그들로서는 「창조의 문제」를 두고 오래전부터 고뇌해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느닷없이 제3자(매니저)의 입을 통해 터져나와 더 큰 혼란과 충격을 빚었다.<김경희기자>김경희기자>
◎서태지의 흡인력/뛰어난 재능으로 모든 노래 직접 작곡/앨범마다 변화추구 청소년 사로잡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는 청소년들, 특히 10대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요소들이 늘 엿보인다. 그것은 모든 노래를 직접 작곡할 만큼의 뛰어난 그들의 음악적 재능에 실려 「새로운 형식과 파격」의 두 얼굴로 다가왔다.
92년 첫 앨범 「난 알아요」는 우리가요계의 큰 흐름을 랩 댄스 뮤직으로 바꾸었고, 2집 「하여가」는 랩과 메탈에 태평소 연주까지 결합시켰다. 얼굴을 완전히 바꿔 3집에서는 얼터너티브 록을 들고 나와 늘 새로운 것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형식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운문 투에서 산문으로 바뀐 가사, 감미로운 사랑과 이별 대신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표현되는 10대들의 마음읽기와 현실비판이 서태지신드롬을 낳게 했다』고 분석한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은 3집의 「교실 이데아」로 입시와 성적위주의 교육현실을 비판했고, 「발해를 꿈꾸며」로 통일도 얘기했다.
미국 갱스터 랩그룹 사이프레스힐의 음악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말려든 4집에서도 이같은 관심은 이어졌다. 그들은 『내일조차 없었어. 또다시 제압이 시작됐다』(컴 백 홈)며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시대유감)라고 노래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70년대의 암울한 체제에 대한 20대 젊은이들의 우울하고 소극적인 저항의 표현이라면, 「난 알아요」로 시작된 서태지의 음악은 사회제도와 관습에 억제된 90년대 10대들의 심정을 다이내믹하게 대변한다는 견해도 있다.<이대현기자>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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