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수도가 한눈에… 전략요충 실감/이스라엘 경보시설 평화회담 장애로/갈릴리호의 발원지 「물 문제」도 걸림돌골란고원은 성채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갈릴리 호수변의 휴양지 티베리아스를 지나며 뺨을 스쳤던 따스한 훈풍이 어느새 서늘해졌다고 느낄 무렵 골란고원은 병풍을 두른듯 펼쳐져 있었다. 평균 해발 800∼900m. 하지만 주변지역이 해수면 아래 200∼300m인지라 올려다 본 고원은 더 높아 보였다. 북쪽끝으로 흰눈을 정상에 인 영산 헤르몬이 짙은 구름을 뚫고 「떠있는 것같아」 신비함을 더하는 골란은 이스라엘의 안보상황을 눈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곳이다.
구절양장의 가파른 길을 돌고 돌아 오른 고원 위는 의외로 적막했다. 길 양편 곳곳에 「지뢰 주의」라는 표지 외에 분대 단위의 보병이 순찰을 겸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띌 뿐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 대전차 장애물등 「살벌한 전선」의 모습을 기대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주위를 휩싸고 있는 긴장감은 영하의 찬바람속에 팽팽히 얼어붙어 있었다. 출발 전 만난 이스라엘군(IDF) 대변인 그림커 샤곤 중령이 『아직은 평화의 시대가 아니다』라며 『골란을 가보라』고 한 말이 실감났다.
이른바 「냉화(cold peace)」의 현장. 이스라엘과 아랍의 맹주를 꿈꾸는 시리아가 첨예하게 맞붙어 있어 단 한방의 총성도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할지 모를 말그대로의 「화약고」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역설적으로 평화로운 골란을 만들어 냈다. 이스라엘이 82년 남부 레바논에 진입해 설정해 놓은 「안전지대」와 인접 북부 갈릴리지역에 쉴새없이 총격전이 벌어진 것과는 달리 골란은 지난 20여년간 총성 한방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연한 평화 기운이 움트고 있는 것은 아니다. 67년, 73년 두차례의 전면전 당시 파괴돼 고원 곳곳에 남아 있는 녹슨 탱크및 트럭 잔해, 울타리처럼 세워진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옛 상처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코알라가 좋아하는 호주 원산의 유칼립투스 나무가 골란과 인연을 맺게 된데는 사연이 있다. 67년이전까지 골란고원을 장악하고 있던 시리아군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이스라엘 마을(키부츠)들에 이따금 포격이나 총질을 해댔다.
이로인해 주로 민간인들인 이스라엘인 140여명이 숨졌고 주민들은 방공호속에 몸을 숨겨야 하는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 당시 저격병의 눈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성장이 빠르고 나뭇잎이 무성한 유칼립투스 나무를 마을 둘레에 심었다. 「전쟁」이 심은 나무는 현재 무성히 자라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고원위 옛 시리아군 진지 주위에도 심어져 있었다. 이와관련, 안내를 맡은 IDF 대변인실 여군병사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암약하던 「전설적인 스파이」 코헨의 활약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아 최고위층과 가까워진 코헨이 부대 조경을 위해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을 것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67년 6일전쟁(3차 중동전) 개전시 이스라엘 조종사들은 시리아영내 유칼립투스 나무만 보고도 공격을 퍼부어 시리아군 진지를 무력화시키며 초반 승부를 결정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군 정보장교 이후타크 알마고 중위(19)는 시리아측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부스티어 초소(GP)에서 『골란의 평온은 이스라엘이 고원을 장악한 데 따른 결과로 골란의 전략적 중요성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의 감시 장비를 통해 보면 70㎞ 떨어진 다마스쿠스의 일반 가정집 벽에 걸린 사진까지 뚜렷이 보인다』고 말했다. 즉 시리아영내를 샅샅이 훑어 시리아군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군은 현재 이같은 지상 조기경보체체를 헤르몬산을 비롯해 골란고원내 3곳에 설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자신의 심장부까지 내보이고 있는」 시리아로서는 심각한 안보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양국이 진행하고 있는 평화회담이 질척거리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문제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고원을 반환하더라도 자위 차원에서 고원내 지상 경보체제는 유지되길 바라는 반면 시리아는 완전 반환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상호간 해묵은 불신이 장애로 남아있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과거 평화 유지에 무력했던 유엔 분리감시군(UNDOF) 대신 보스니아에 파견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평화이행군과 같은 다국적군을 골란에 파견, 양국간 단계적인 평화 이행을 도모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반환을 둘러싼 또하나의 장애는 골란고원의 「물 문제」이다. 골란은 이스라엘 전체 물공급량의 30%를 점하고 있는 갈릴리호의 발원지로 중동의 「생명수」인 요르단강과 야무르크강을 끼고 있다.
시리아가 상류에 댐을 건설, 물길을 돌리려 한다는 위기감이 67년 전쟁을 촉발시킨 이유중 하나가 될 정도였다. 이 문제는 수자원의 공동개발과 이용을 다룰 중동 경제회담에 넘겨져 있다. 묵묵히 버티고 선 골란고원은 반세기에 걸친 대립이 얼마나 서로에게 소모적이고 무의미했는 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듯 싶었다.<골란고원=윤석민특파원>골란고원=윤석민특파원>
◎골란은 어떤 곳인가/평균 해발 800∼900m의 고원지대/73년 이후 군사제한구역으로 설정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북동쪽에 위치한 평균 해발 800∼900m의 고원지대이다. 길이 67㎞ 너비 25㎞ 가량의 면적에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200m인 헤르몬산이며 이 산 밑으로는 레바논, 시리아에 걸쳐 이어진 베카계곡이 지나간다.
48년 1차 중동전 결과 시리아에 귀속됐으나 67년 3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73년 4차 중동전(욤 키푸르전)기간에 이스라엘과 시리아군이 대규모 탱크전을 이 곳에서 벌이기도 했다. 이후 유엔의 감시아래 양측 10㎞ 지대에 각각 병력 600명 탱크 65대 야포 35문씩만을 두도록 한 군사제한구역을 설정했다. 유엔은 이와 함께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리아영토내에 「비무장 분리지역」을 설치하고 약 100명의 유엔분리감시군(UNDOF)을 주둔시키고 있다. 일본의 자위대 병력이 골란고원에서 UNDOF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바르레브 골란주민위 홍보위원/“골란은 영원한 「이」의 영토”/“67년 6일 전쟁때 점령 아닌 해방/이주 장려해놓고 반환은 안될 말”
『골란은 안보적 중요성 못지 않게 역사적으로도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우리의 땅입니다』
골란주민위원회(GRC) 홍보위원인 라모나 바르레브씨(50)는 골란위에 건설된 이스라엘 신도시 카츠린을 찾은 기자에게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시리아와의 평화협정 체결을 대가로 추진중인 골란고원 반환 구상에 반대, 「골란 지키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는 맹렬 여성이다.
그는 『골란에는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유대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웠던 감라 유적지를 비롯, 최초의 시나고그(회당)터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바르레브씨는 67년 6일전쟁당시 골란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해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69년 갓 결혼한 남편 사미 바르레브씨(53·현 카츠린시장)와 함께 골란으로 이주한 그는 『당시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고 두 아들도 모두 이곳에서 낳았다』고 말했다. 4계절이 뚜렷한 날씨와 풍부한 물이 있는 골란에서는 중동에 희귀한 사과, 배등의 농산물과 질좋은 포도주를 생산, 일반 이스라엘인들의 2배에 가까운 2만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골란 이주를 장려한 것은 바로 정부였다』고 강조한 바르레브씨는 『73년 당시 골다 메이어 총리가 카츠린시 건립을 승인하고 74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정부(1차)가 시건설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가 내놓은 「골란 반환 반대」 홍보비디오에는 당시 라빈총리가 「골란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영토」라면서 많은 이주자가 나서길 바란다고 말하던 장면이 담겨 있다. 이같은 정부의 뒷받침으로 골란내에는 현재 32개 키부츠 및 정착촌에 약 1만4,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최근 구소련 지역내 유대인의 이주가 지속되며 주민수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골란의 반환은 곧 평생을 바쳐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포기하라는 의미라고 바르레브씨는 설명했다.
『정부가 반환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했다. 『결정은 정부가 아닌 크네세트(의회)가 하며 우리는 많은 의원의 지지를 확보해 놓고 있다』고 바르레브씨는 답변했다. 즉 동예루살렘과 함께 합병조치를 취했던 골란지역의 반환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요구되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바르레브씨는 GRC를 중심으로 한 골란주민들이 시리아와의 관계정상화를 비롯, 중동 평화과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 뒤 『평화 공존을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