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밀반군 강경파 힘과시 무차별 테러카드 또뽑아/종전과 달리 외국인도 공격 정부압박「잊혀진 사람들의 잊혀진 전쟁」인 스리랑카와 타밀 반군간의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고있다.
지난해 말 스리랑카 정부군이 반군의 최대 거점인 자프나 반도를 장악해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되던 내전양상은 31일 무려 1,500여 사상자를 낸 최악의 폭탄 테러가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한복판을 흔들며 다시 불 타올랐다. 정부군의 대규모 공세를 피해 밀림지대로 잠적했던 타밀 반군이 우려되던 「최악」의 수단인 민간인을 대상으로한 무차별 테러 카드를 또다시 뽑아든 것이다.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지목된 타밀 강경파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소속 게릴라들의 노림수는 명확하다. 스리랑카 정부가 추진중인 타밀 자치안의 의회통과를 저지하려는 목적이 깔려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사회혼란을 촉발, 타밀 자치안에 반대하는 스리랑카 의회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관측이다.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대통령(여)이 지난달 17일 의회에 상정한 타밀 자치안은 지난 13년간의 스리랑카 내전을 종식시키는 획기적 내용을 담고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회교도 타밀족에 자치를 허용함으로써 스리랑카의 지배민족인 불교도 싱할리족과의 공존을 단계적으로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회교 독립국가 창설을 유일한 목적으로 무장투쟁해온 LTTE로서는 자치안은 130만 타밀족의 분열을 노린 정부의 술책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이번 테러가 주목되는 점은 LTTE가 종전과는 달리 외국인도 개의치않고 테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스리랑카에 몰려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걸음을 되돌려 스리랑카 경제를 압박하겠다는 전술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방관하던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어보겠다는 의도로도 파악된다. 한때 3만명에 달했던 LTTE의 막강한 전력은 지속된 정부군의 토벌로 현재 수천명에 불과할 정도로 위세가 크게 떨어져 있다.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번 테러사건에도 불구, 타밀자치안을 기필코 실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타밀과의 공존에 반대하는 강경세력들의 입지도 강화돼 자치안 통과도 낙관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무엇보다도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지 않는한 스리랑카와 타밀간의 해묵은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이상원기자>이상원기자>
◎스리랑카 내전 일지
▲83년 7월24일=정부군, 소탕작전 반군 400명 사망
▲84년 11월30일=반군, 싱할리족 마을 공격 127명 피살
▲87년 4월21일=콜롬보 중심가 차량폭탄테러 113명사망
▲90년 8월 3일=싱할리족 회교사원 테러 타밀족 140명 사망 ▲91년 5월21일=타밀, 내전 개입한 라지브 간디 전인도 총리 암살
▲93년 4월23일=타밀 온건지도자 라리스 아투라스무달리 암살
▲93년 5월 1일=타밀, 라나싱게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대통령 암살
▲94년 10월24일=스리랑카 야당 대통령후보 가미니 디사나야케 테러사망
▲95년 8월 9일=콜롬보 폭탄테러 22명 사망
▲95년 11월11일=스리랑카 군사령부 폭탄 테러 3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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