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검진기로 환자진단·처방 “시간·돈 절약효과”/가상현실기법 등 이용 첨단 「로봇 원격수술」 계획도뉴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올 생활의 획기적인 변화 가운데 의료분야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의술은 인간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발달해왔지만 진료방식은 의사와 환자의 직접대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뉴미디어는 진료과정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환자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도 진료받도록 하는 원격의료가 뉴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린빌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부의 평야 한가운데 있는 소도시이다. 이곳의 이스트캐롤라이나의대에 설치된 「건강과학 통신연구소(CHSC)」에는 21세기의 첨단의료체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의대부설연구소의 이름에 「통신」이라는 말이 들어간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연구소는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통신혁명에 의료를 결합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소의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도킹 스테이션」이라고 불리는 첨단진료실. 사방 4m 남짓한 방은 진료실이라기보다는 방송국의 중앙통제실을 연상케 한다.
의사석을 중심으로 멀티미디어컴퓨터, 대화형 고선명TV, 심전도측정기(ECG), X선촬영사진판독기 등 첨단기기의 화면이 둘러싸고 있다. 첨단기기들은 100여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 요양원의 원격의료 단말장치와 연결돼있다. 환자의 심전도데이터는 단말기역할을 하는 헬멧을 통해 초당 27메가바이트를 전송할 수 있는 ATM(비동기·비동기 전송방식)네트워크를 이용, 도킹스테이션에 전달한다. 의료용 화상전송 네트워크인 「REACH―TV(Rural Eastern Carolina Health Network―TV)」는 일반 화상회의보다 훨씬 빠른 실시간(리얼타임) 대화형TV 기능을 제공한다. 의사는 환자쪽의 카메라를 원격조종하며 3차원카메라와 스테레오청진기를 통해 입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동시에 컴퓨터화면을 통해 환자의 개인기록을 보며 의학전문 CD롬저널 등을 즉석에서 참고할 수도 있다.
CHSC는 실험단계에 있는 도킹스테이션보다는 한 차원 낮은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원격진료 모듈」 4개를 94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최대 교도소인 랠리 중앙교도소 의무실을 비롯한 15개의 소규모 의료기관과 135개 의료교육기관이 CHSC와 연결돼 있다. 원격의료프로그램 기술지원팀의 글로리아 존스씨는 『원격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은 전화에서 위성통신 대화형TV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뉴미디어를 총망라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정신과질환 심장병 비뇨기질환 등 주로 정기적인 진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이 주대상이지만 머지 않아 가상현실을 이용한 수술도 가능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이견은 없다.
가상현실기법은 이미 부분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안과전문의 스티브 찰스씨는 가상현실기법을 이용한 안과수술용 기계를 발명했다. 멀리 떨어진 환자의 수술부위를 가상현실화면으로 확대해 비춘 뒤 의사가 가상현실용 특수안경과 모의수술기구를 사용해 수술하면 수술대 위의 환자에게 그대로 시술된다. SRI인터내셔널사는 의사가 촉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입체영상재생기를 개발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은 로봇을 이용한 원격수술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의사의 동작을 2개의 팔을 가진 마이크로로봇에 전달시켜 세포 1개까지도 정확히 집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료기관끼리를 연결하는 방식에서 한걸음 나아가 집에 앉아 진료와 처방을 받는 「재택의료」도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주택건설협회와 애플리캐이션스 밸리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듀햄에 「헬스 하우스」를 건설중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면 「스마트변기」가 소변검사를 실시, 데이터를 병원으로 보내 개인파일에 저장한다. 「스마트체중계」에 올라서면 체중변화와 체내지방를 측정해 정상치를 넘어서면 경고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의사의 지시가 화면에 표시된다.
또 거주자의 건강상태와 체질에 맞는 식단이 부엌의 컴퓨터에 출력되고 약품캐비넷에서는 필요한 약품이 조제돼 나온다. 약속된 시간에 대화형TV(또는 PC단말기)앞에 앉으면 최신건강기록 자료를 갖고 있는 주치의가 화면에 나타난다. 애플리캐이션스 밸리사의 로웰 크리스티회장은 『듀햄 이외에 애틀랜타시등 다른 지역에서도 헬스하우스 건설작업이 추진중이며 2000년이후에는 상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의대는 조지아 기술연구소(GIT), 드와이트 아이젠아워 군사의료센터와 공동으로 25개 가정에 대해 원격의료실험을 하고 있다. 자가진료용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환자가 직접 환부를 지적, 자료를 병원에 보낼 수 있는 휴대용 레이더 검진기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 원격의료협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서부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동부조지아 웨스트버지니아 등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100여군데에서 원격의료프로젝트가 실시되고 있다. 국립통신정보국(NTIA)과 미상무부는 지난해 캔자스주 헤이스 메디컬센터에 30만달러를 지원한 것을 비롯, 원격의료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조지아주가 92년 원격교육·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 현재까지 7,3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지방정부의 지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그린빌=김준형특파원>그린빌=김준형특파원>
◎원격의료 발달역사/59년 네브래스카대 첫 시도… 80년대 통신발달따라 활기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료한다는 원격의료개념은 20세기 이전부터 공상과학소설 속에 등장했다. 그러나 59년 네브래스카대가 진료 및 의학교육에 쌍방향 폐쇄회로TV를 사용한 것이 미국 최초의 원격의료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어 같은 해 록히드사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미국공공보건국이 공동으로 우주비행사와 인디언보호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원격의료체계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휴대용 위성송수신장치를 이용한 위성통신이 부분적으로 사용됐다.
68년에는 보스턴소재 매사추세츠종합병원과 로건 국제공항사이에 대화형 극초단파TV라인이 설치됐다.
심전도기 청진기 등 의료장비를 공항에 설치, 응급환자에 대한 원격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이 병원은 사업결과를 토대로 보스턴 베드포드향군병원 환자들에 원격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70년대 초반에 연방정부가 15개의 원격의료프로젝트에 대해 재정을 지원했으나 재정지원이 중단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80년대 들어 디지털압축신호 전송기술이 개발돼 전화선의 전송능력이 종전의 30배로 대폭 늘어나면서 원격의료기술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캐나다 이탈리아 인도 등지에서 쌍방향오디오나 일반폐쇄회로TV 등 낮은 수준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원격의료체계수립 움직임이 활발히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
89년 공공보건국이 텍사스공과대학의 메드넷(MEDNET)프로그램에 190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의 본격적인 재정지원이 재개됐다. MEDNET이 가동된 첫해에 22%의 의료경비절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면서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 정보고속도로를 통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고선명TV 위성통신 가상현실 등 각종 뉴미디어기술이 발달하면서 원격의료는 검진 및 수술, 인공지능컴퓨터를 이용한 재택진료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인터뷰/이스트 캐롤라이나의대 CHSC소장 볼 치 박사/“아직도 의료혜택 못받는 사람 많아/「도킹스테이션」 본격 실용화에 최선”
91년부터 원격의료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는 이스트 캐롤라이나의대는 원격의료분야에서 가장 앞선 대학 가운데 하나이다.
이 대학 부설 「건강과학통신연구소(CHSC)」소장으로 원격의료부문 책임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볼치박사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원격의료분야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볼치박사는 『지역적 경제적 이유나 의료인력의 한계 등으로 미국에서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뉴미디어등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통신기술을 이용한 원격의료는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가 일반화하면 의사의 진료를 받는 사람 가운데 40%는 병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X선촬영기 등 고가의 장비나 전문의를 찾아 도시의 대형병원을 찾아가는 대신 원격의료 단말시설이 갖춰진 근처에서 치료받는 것이 환자에게도 이익이 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멀티미디어컴퓨터 인터넷 위성통신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뉴미디어는 원격의료에 무궁무진한 적용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볼치박사는 『현단계에서 우리가 시급히 하고자 하는 일은 이 기술들을 하나로 묶어 의사의 책상 위로 가져다 놓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구체화한 것이 「도킹 스테이션」이다.
원격의료가 지니고 있는 경제적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초기단계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도킹스테이션」하나를 만드는 데 200만5,000달러가 들기 때문에 아직 본격적으로 실용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볼치박사는 『갈수록 치솟는 미국의 의료수가와 가속화하는 뉴미디어기술발달은 원격의료의 일반화를 가속화시키는 두 축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그린빌=김준형특파원>그린빌=김준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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