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외교무대 중추역 “합격점”/발언횟수·설득력서 함께 진출한 2개국보다 앞서/지역분쟁 공식·비공식회의 적극참여 “극성”평판도이달 4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은 잠시 당황했다. 회의는 당초 부룬디사태와 관련, 영국이 마련한 결의안 초안에 대해 각 회원국이 개별 입장을 개진키로 돼있었으나 이미 회원국간 입장정리가 완료된 상태임을 현장에서 알게됐기 때문이다. 회원국들은 전날 회의를 마치면서 각자 본국정부에 이를 보고, 의논을 한 뒤 회의를 속개키로 했었으나 한국이 모르는 사이 그날 밤에 서로 의견조정을 끝내버린 것이다. 한국대표단은 즉석에서 미리 준비한 발언내용을 적절히 조정해 고비를 넘겼다.
그로부터 약 2주후 한국대표단은 이번엔 프랑스대표단으로부터 발언내용에 대해 「인사」를 들었다. 프랑스가 내놓은 구유고사태관련 결의안에 대해 과거 결의안과의 차이점, 법적 당위성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프랑스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 것이 프랑스대표단에게 인상적으로 비친것이다. 프랑스측은 회의후 우리대표단에게 『준비가 철저하군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언뜻 듣기에 이 말은 신입 회원국의 활동에 대한 칭찬일수도 있지만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핀잔의 의미일 수도 있다.
31일로 꼭 한달을 맞게 된 한국의 안보리 이사국 활동은 그런대로 합격점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한달은 걸음마단계도 아직 못끝낸 기간이라고 해야한다. 그러나 초기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대표단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감이 잡힌다』며 앞으로의 활동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같은 시기에 새 회원국이 된 다른 4개국과의 활동을 비교해봐도 한국의 활동은 별 손색이 없는 것으로 유엔 주변의 평가가 모아지고 있다. 가령 이집트의 경우는 원래가 국제외교에 강한 베테랑에 속하는 나라이고 칠레 대표단을 이끄는 소마비아대사는 지난해 사회개발정상회의를 주도할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고있는 중량급이다. 다음으로 폴란드나 기니비사우와 비교할 경우 발언의 횟수와 내용에서 이들을 앞서고 있다는데 이의를 다는 의견은 없는 것 같다.
안보리 활동의 구체적인 척도는 우선 안건에 대한 발언횟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느냐가 평가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안보리는 그동안 구유고 이라크 앙골라 부룬디 르완다 사태등 10여개 지역분쟁에 대해 매일 공식 비공식회의를 거듭해왔다. 이들 회의에서 한국대표단은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발언을 해 유엔주변에서 『극성』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안보리 이사국 활동을 위해 주유엔 한국대표부는 박수길대사외에 9명의 전담팀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박대사 주재로 매일 아침 저녁 두차례 회의를 갖고 사전 의제검토, 우리의 입장및 발언내용 정리, 본국협의 사항등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회의는 문자 그대로 토론식이다. 박대사가 숙지한 토론내용은 다음 회의의 발언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박대사는 초기에는 사전에 준비한 원고내용을 그대로 읽는 식으로 발언을 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요점만을 정리한 메모를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자신이 붙었다는 얘기다.
안보리 가입이후 박대사에 대한 면담신청이 부쩍 늘어난 것도 한국의 활동상과 무관치 않다고 할 수있다. 지난 한달동안 박대사는 이라크 쿠웨이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의 외무장관이나 주유엔대사로부터 면담신청을 받고 이들을 잇달아 만났는데, 이들은 모두 안보리 의제로 올라 있는 분쟁당사국들이다.
한국의 안보리 활동이 이처럼 순탄하게 진행돼 온 데에는 아직까지 까다로운 의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특히 미국의 입장과 달리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상황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런 점에서 다음달부터 다루게 되는 이라크 제재 해제 문제에서 한국이 취할 입장은 안보리 주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이사국 임기에 안보리가 남북문제를 다루게 될 지 여부가 주목의 대상이다. 남북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시아지역의 분쟁이 의제로 상정될 경우 보다 각별한 역량을 보일 수 있을지 여부도 지켜볼 일이다.<유엔본부=조재용특파원>유엔본부=조재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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