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수입의 10배 고소득·전체인구 10%선 육박/“구공산세력 부활 위기감” 12·17총선서 개혁파 지지/“새로운 러시아인” 형성… 민주화 안전판될지 주목모스크바의 남부 카쉬르스카야거리 47번지에서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알렉세이 카르바토브(36)는 주말에도 자동차 점검 및 수리예약을 받는다. 「라다」승용차로 알려진 아프토바즈 자동차회사에 다니다 카센터를 차린 그는 자동차 도난 방지기를 주로 취급하는데 300∼500달러 상당의 경보장치를 한달평균 10대정도 설치한다. 제반 비용을 뺀 수입은 월 1,200∼1,500달러. 모스크바 보통사람의 한달 평균수입(150달러)의 10배정도를 벌어들인다.
최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마하드 구마트로크(28)는 러시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꼽힌다. 소수민족인 다게스탄 출신인 그는 타고난 운동소질을 살려 권투선수로 상당한 명성을 쌓은 뒤 체육계 관리로 변신, 각 분야의 인사들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했다. 그는 이같은 인간관계를 이용, 시장경제 도입초기에 가구 및 건자재 사업을 벌여 상당한 돈을 모았다. 사업장도 3곳으로 늘었으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구공산세력의 부활과 마피아에 대한 환멸이 겹쳐 이민을 결심했다.
알렉세이와 마하드는 최근 러시아에서 각광받는 노브이 루스키(새로운 러시아인)이다. 노브이 루스키는 얼마전부터 경제개혁의 흐름을 타고 급속히 성장, 러시아 사회안정의 버팀목이 되는 중산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일각에서는 사치성 과소비를 이유로 이들을 신부유층으로 분류, 일반서민들과의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계층으로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치·경제적 감각으로 볼때 개혁 선도역할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와 러시아 비즈니스 마케팅 분석센터 등의 조사에 따르면 노브이 루스키로 추정되는 월수입 500달러이상의 부유층이 전체인구의 10%선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가운데 50∼60%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기관에 따라 통계가 조금씩 다르지만 마케팅 분석센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러시아에서는 월급이 1,000달러이상인 사람들이 부유층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그 수는 전체인구의 3∼5%정도로 가족을 포함하면 450만∼750만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각 지역별로 부유층의 기준이 다르며 모스크바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기준이 2∼2.5배나 높았다.
지난해 12·17총선이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노브이 루스키는 급진경제 개혁정책에 편승,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행동양식마저 서구화한 새로운 유형의 러시아인이다. 노브이 루스키는 헤드리 스미스 전뉴욕타임스 모스크바 특파원이 「더 뉴 러시안」이라는 저서에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으로 변해가는 구소련인을 기존의 구소련인과 구별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상당한 부를 지닌 서구화한 러시아인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착됐다.
이들은 12·17총선에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과는 전혀 다른 투표 성향을 보여 또다른 주목을 받았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쉬돔 로시야(우리집 러시아·당수 체르노미르딘총리)와 개혁진영의 야블로코(당수 야블린스키전부총리)가 선전한 것은 계속적인 경제개혁을 원하는 노브이 루스키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였다.
때문에 노브이 루스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어렵게 축적한 재산을 어떤 형태로든 국가로 귀속시키려는 범국가적인 조치이다. 이들은 시장경제 도입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을 보호하려는 구공산세력의 부활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국가에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이들이 지난 총선에서 대거 투표에 참가한 것은 구공산체제로의 회귀를 내세워 바람을 일으키는 공산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또 마피아로부터 상당한 신변위협을 느끼며 생활한다. 라이벌과의 과열경쟁으로 하루하루 극도로 긴장된 상태를 지속해가지만 그것은 마피아의 위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많은 은행가들과 기업인들이 마피아집단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을 접하면서 이들은 회의감도 갖게 됐다. 마하드씨가 견디다 못해 미국행을 결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브이 루스키가 되는 길은 다양하게 열려있다.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 공공기업의 민영화나 개인 사업의 인허가, 외국인 기업의 개발 허가 및 승인 과정 등을 통해 한꺼번에 큰 돈을 만들었다. 구소련 시절부터 뒷거래를 통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계층은 러시아 상업 관련 법규의 허점을 파고들어 돈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또 마피아 그룹은 돈이 몰리는 길목을 지키고 앉아 공갈을 쳤고 투기 사업인 호화 식당과 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따라서 노브이 루스키는 처음부터 합법적으로 자본을 축적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일반 러시아인들과는 다른 사업 감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브이 루스키가 서구형의 중산계층으로 성장해 러시아 민주화의 안전판이 될지 점치기는 아직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지난해 12·17 총선에서 보여준 투표 성향은 그러한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노브이 루스키가 사는 법/벤츠·BMW 등 외제승용차로 부과시/주말엔 호화별장인 다차서 파티즐겨
노브이 루스키는 자신의 부를 남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대부분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모델같은 늘씬한 아가씨와 재혼하거나 애인으로 데리고 다닌다.
이들은 우중충한 겨울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튀는 단색계통 양복을 입고 흰 양말을 선호한다. 집안을 값비싼 외제가구들로 채워놓고 수만달러짜리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등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새해 연휴를 해외에서 보내는 것은 당연하고 주말이면 새로 장만한 호화 다차(별장)에서 파티를 여는 등 기존 러시아인들과는 다른 생활양식을 고집한다. 이들은 또 모스크바 시내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고급 레스토랑으로 애인이나 친구들을 초청, 한번에 600∼700달러짜리 호화판 식사를 즐긴다.
이들에게 필수품은 겨울에는 이탈리아산 부츠와 터키산 가죽점퍼, 휴대전화, 크레디트 카드 등이다. 향수도 애용하는 편이다. 이처럼 노브이 루스키는 오늘날 러시아에서 제일 확실하고 두꺼운 소비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전략적 공략 대상으로 이들을 선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인간관계는 상호협력이 아니라 개인이익에 기초해 이뤄진다. 상당히 이해타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견해에 따르면 도덕성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러시아 국민 임금·소득/작년말 실질임금 90년비 60%이상 하락/부업으로 보전 실질소득은 큰변화 없어
공산당이 몰락한 이후 러시아 국민의 실질임금은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실질소득은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등 서방경제기관에 따르면 러시아국민의 실질임금은 90년이후 치솟는 물가로 계속 하락해 지난해말에는 90년과 비교해 60%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수치상의 국민소득은 약간의 변화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90년의 실질소득에 비해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90년 한달에 100달러상당을 임금으로 받던 노동자의 경우 지난해 말에는 실질가치로 임금을 40달러도 채 못받았지만 임금과 임금외 소득을 합쳐 한달간 벌어들인 실질소득은 100달러 정도는 된다는 얘기다.
이 문제는 많은 서방 경제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러시아경제의 현주소이다. 실질임금이 급속한 하향세를 보이면 대개 실질소득도 같은 비율로 감소하는 게 경험론적인 경제이론이나 러시아의 상황은 이같은 이론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국민이 임금이외에 다른 소득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러시아국민은 직업외에 시간제 부업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 소득을 충당한다.
러시아 외무부 과장직에 있는 한 관료는 한달 임금이 200달러지만 이 돈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어 상오에만 외무부에서 일하고 하오에는 모스크바소재 외국기업체에서 부업을 해 한달 2,000달러가 넘는 돈을 벌이들인다. 현재 러시아국민은 이같이 본업과 부업을 따로 갖고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의 실질임금이 급격하게 하락하는데는 이 나라의 왜곡된 세금구조도 일조를 하고 있다. 러시아 세금체계상 임금생활자의 세금은 너무 과중한 반면 사업가와 재산소득자는 상대적으로 낮다.
연간 1만달러의 봉급을 받는 사람은 임금의 62%를, 5,000달러의 급여생활자는 49%의 세금을 내야한다. 반면 사업가와 재산소득자는 최고 38%의 세금만 내면 된다. 또 사업가들은 3,500개 이상이나 난립해 있는 러시아 상업은행을 잘만 이용하면 사업소득세를 12%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조희제기자>조희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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