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강화에 소환 응하는체 위장/23일 몰래 빠져나와 택시로 달려/우리 대사관 도착 “아내 보고싶다”부인 최수봉씨(36)에 이어 망명에 성공한 현성일씨(37)는 남한이 부인을 납치해갔다고 주장하는등 북한측을 안심시키는 기지를 발휘한 끝에 강화된 감시망을 뚫고 잠비아의 우리 대사관을 찾는데 성공했다.
외무부당국자가 설명하는 현씨의 망명경위는 다음과 같다.
현씨가 탈출할 당시 북한대사관에는 기존직원 10여명외에 인근 아프리카 지역에서 증원된 5∼6명의 「공작원」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현씨는 우리 대사관에 도착하자마자 『평양으로 부터 대사와 함께 귀국하라는 소환명령이 떨어졌다』면서 『북한에 돌아가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현씨는 부인 최씨에 이어 태권도 교관으로 위장 파견됐던 북한 공작원 차성근씨(29)마저 망명하자 집중적인 감시의 대상이 됐다. 현씨는 우선 북한대사 김웅성을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현씨는 이를위해 18일 기자회견을 자청, 『남쪽이 아내뿐 아니라 나까지도 납치하려 했다』고 주장한뒤 『잠비아 정부는 외교관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남쪽과 결탁한데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거짓주장을 하기도 했다. 현씨는 이렇게 해서 북한측을 안심시킨뒤 망명을 시도했다. 그는 소환명령에 응해 짐을 꾸리는등 본심을 위장하면서 부인 최씨와 차씨를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 까지 했다.
현씨는 감시가 누그러진 틈을 이용해 23일 하오 아무도 몰래 북한대사관을 빠져 나올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현씨는 뒷문을 통해 대사관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곧장 우리 대사관으로 직행했다.
관계당국은 연쇄 망명으로 북한대사관이 거의 「자포자기」 상태의 혼란에 빠져있었고 감시요원이 보강되기는 했으나 문책에 대한 두려움과 기강해이로 제대로 감시가 이뤄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씨는 우리 대사관에 망명한뒤 『아내가 무척 보고 싶다』면서 『평양에 두고 온 아들, 딸 때문에 엄청난 번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씨의 망명에 접한 우리 대사관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23일 밤늦게 잠비아 당국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우리 대사관측은 북한이 또다시 트집을 잡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것을 우려, 잠비아당국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도 잠비아 정부에 전했다. 잠비아당국은 26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과 함께 현씨의 자유의사를 확인한뒤 협조했다.
현씨는 망명의사 확인과정에서 우리 대사관 김진호대사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와 합류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본의아니게 한국과 잠비아 정부를 비난해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씨의 망명은 해외공관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북한체제가 심각한 불안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해 주고 있다.<고태성·장인철기자>고태성·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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