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존경하는 재판장님.먼저 저희 공판관여 검사 일동은 그동안 엄정하고 소상한 심리를 통하여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발견에 애써주신 재판부에 대하여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전직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재임중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형적인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입니다. 정직과 진실을 수범으로 실천해 보이겠노라고 공언하며 대통령직에 취임한 후 앞에서는 내내 공직자 비리를 뿌리 뽑을 것을 지시하면서 뒤로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천억원에 이르는 뇌물을 은밀하게 받아온 사람이 바로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때 우리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이 가히 어느 정도인지는 이 자리에서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건으로 국가가 행사하는 모든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직이 지닌 존엄성과 도덕성마저 치명적으로 훼손함으로써 국가원수인 대통령이라는 직위와 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척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사회의 총체적 비리와 부실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정치는 물론 사회 각 분야까지도 오염시켜 도덕적 타락을 이토록 심화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이 사건 수사에 임하였습니다.
나아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직위를 이용하여 범법행위를 하였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처벌이 따른다는 전례를 세움으로써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현실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는 각오로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임하였습니다.
2. 사건의 성격
이 사건은 노태우 피고인이 대통령 재임기간에 대기업회장들로부터 정부발주 대형공사를 비롯한 각종 특혜성 사업등과 관련하여 금품을 받고, 그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이 도와준 것으로 드러난 전형적인 뇌물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정부의 각종 정책을 수립, 추진함과 아울러 행정 각부나 자치단체의 장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어,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 금융및 세제의 운용 과정에서 기업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그러한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주가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만난 것이 바로 이 사건 범행의 장소가 된 개별면담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형식적으로는 기업현황, 정책건의 등에 관한 의견을 직접 청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표방되었지만, 실제로는 특정사업의 수주나, 신규사업관련 인·허가등의 특혜를 바라거나 포괄적으로 기업운영 전반을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금품을 주고 받는 계기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더구나 노태우 피고인이 그와같이 수수한 금품을 시중은행의 가명계좌에 분산예치해 두거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등으로 관리해 왔을 뿐아니라, 그 자금의 상당부분을 부동산 매입 등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한편 2,0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퇴임후에까지 남겨 놓은 사실에 비추어 볼때 이는 단순한 뇌물사건이 아니라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령의 부정축재사건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건의 금품제공자나 그밖의 관련자들 또한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대통령의 부정축재를 조장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사실관계 및 증거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의 법정진술, 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들의 진술조서등을 비롯한 이 사건 심리과정에 현출된 제반 증거를 종합하면 그 증명이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다만, 수수 또는 교부한 돈의 성격에 관하여 노태우 피고인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집권당 총재로서 정당의 운영, 각종 선거에서 안정의석의 확보, 국가조직 운영의 활성화와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살피는데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수한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뇌물공여 피고인들중 일부는 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노태우 피고인에게 건네준 돈이 뇌물이라기 보다는 인사치레 또는 국사에 보태쓰라는 뜻의 성금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므로, 수수 또는 교부한 금품의 성격에 관한 의견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통치자금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도 않고, 그러한 자금을 조성하여 사용하는데 대한 법적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주고 받은 돈의 성격은 금품수수의 기회가 된 개별 면담이 이루어진 장소와 면담의 형식, 당시 주고 받은 대화의 진의, 주고 받은 금액의 규모, 수수자측의 자금 관리 은닉 형태, 공여자측의 자금조성 과정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특정사업의 수주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 행사에 대한 대가라는 취지가 명시적으로 밝혀졌거나 포괄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선처해 달라는 뜻이 묵시적으로 서로 통하면서 금품을 주고 받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금품을 뇌물이라고 보는 데는 이론이 있을수 없다고 봅니다. 금품을 내놓으면서 겉으로 정치자금으로 쓰십시오, 국사에 보태쓰십시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여 뇌물이 정치자금이 되거나 성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더구나 그와같이 수수한 자금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매입, 기업체에의 변칙대여 등 개인용도에 사용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들의 통치자금 수수 내지 성금제공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대법원판례 역시 「법력상의 직무뿐만 아니라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 그 직무와 관련하여 사실상 처리하고 있는 행위에 관하여 주고 받은 금품」을 모두 뇌물로 인정하는 것에 비추어 보아도 이 사건에서 주고 받은 돈을 뇌물로 보는데 아무런 소장이 없다고 봅니다.
4. 정상문
가. 피고인 이건희, 김우중, 최원석, 장진호, 이준용, 김준기, 이건, 정태수에 대하여 보면,
그동안 피고인들이 국내외의 기업활동을 통하여 어느정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종적 책임이 노태우 피고인에게만 있다고 볼수 없습니다. 노태우 피고인의 부정축재가 가능하도록 한 일방 당사자로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서민들로서는 평생을 가도 만져보지 못하는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뇌물을 제공하여 정경유착의 원인을 만든 피고인들을 비롯한 뇌물공여 기업인들의 책임 또한 그에 못지않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들은 일종의 관행에 따른 성금제공이라거나 권력의 압력에 못이겨 살아남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갖다주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이권을 얻고 특혜를 따내기 위하여 오히려 기업측에서 스스로 나서서 권력을 부패시킴으로써 정경유착의 원인을 제공하고, 이를 더욱 고착화시켰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술축적과 경영합리화로 무한경쟁시대 개방화시대에 대처하려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정경유착의 비정상적 수단에 안주하려는 타성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돈이 남아돌아 그렇게 많은 돈을 대통령에게 갖다 줄리가 있겠습니까,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부처에서는 알아서 모시기 때문입니다』라는 어느 피고인의 고백이 바로 이 사건의 진실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이라 하여 예외가 될수 없듯이 소위 재벌이라 하여 예외가 될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뇌물을 주는 관행」이었다면 이번기회에 이를 단호히 척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정경쟁의 원칙을 깨뜨리고 경제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그와같은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런 관행을 조장한 피고인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 피고인 이현우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은 노태우 피고인과 기업인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안내하는 등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행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신도 6억여원의 뇌물을 받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피고인은 대통령과 그 가족등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경호실장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본래의 직분을 벗어나 노태우 피고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돈을 시중은행의 수십개 가명계좌에 입금시키고, 양도성예금증서를 사고 팔면서 치밀한 돈세탁까지 하는등 노태우 피고인의 부정축재가 가능하도록 가장 측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그야말로 경호실장이라는 직위가 대통령의 신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리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축재를 돕기 위한 자리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스스로 국민의 공복임을 망각하고 상급자의 사복으로 전락한 피고인에게 엄정한 처벌을 내려 마비된 공직윤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피고인 금진호, 같은 김종인, 같은 이원조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대기업의 대표들과 자주 접촉하거나 기업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대기업 회장들과 대통령의 은밀한 개별면담을 주선하거나 금품제공을 요구하여 전달해 주는등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를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금진호 피고인은 거의 협박에 가까운 태도로 금품제공을 요구하기도 하고, 금품제공자로부터 무리한 청탁을 받아 노태우 피고인에게 그뜻을 전달하는 등 경제계 지도층 인사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결국은 동서인 노태우 피고인이 법의 단죄를 받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이원조 피고인은 스스로 뇌물의 액수를 정하여 주고는 이를 채우라고 수차례 강요하기도 하였으며, 김종인 피고인은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이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기업인들에게 부정한 돈을 가져올 것을 요구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의 측근에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직언을 아끼지 말았어야 할 위치에 있었던 피고인들이 그러한 역할을 저버린 채 오히려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를 도운 행위에 대하여는 엄정한 책임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라. 피고인 이경훈, 이태진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새정부이후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대개혁조치로 실시된 금융실명제에 정면으로 배치하여 금융기관의 예금 실명전환 업무등을 방해한 점도 크게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로 인하여 노태우피고인에게 검은 돈의 은신처를 제공한 점이 더욱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금융실명제를 확고하게 정착시켜 경제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피고인들 역시 엄중히 처벌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무쪼록 피고인들에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우리사회의 고질적 부조리와 총체적 부실의 근원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이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노태우 피고인을 제외한 나머지 각 피고인들에 대한 양형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