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을 둘러보면 마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게 된다. 각 정당은 오로지 총선에서 의석을 늘리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총선 손익의 견적에 포함되지 않는 일은 무엇이든 정당의 관심 바깥에 있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었던 비자금사건, 대선자금문제, 정치권사정 등은 가열되고 있는 총선의 열기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물론 민주정치에서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선거가 모든 정치적 관심과 논의를 독점하고 선제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선거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정치학자들은 정치의 본질이 희소한 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공권력의 권위에 의거해 해소하는 것이라는 데 대체로 합의한다. 민주정치에서 선거는 갈등이 일정한 틀 안에서 일어나게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경쟁과 타협을 통해 이를 해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과연 갈등을 제도화하고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선거가 갈등을 해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각 정당이 유권자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계층갈등과 지역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선거가 여전히 이권정치의 도구임을 시사한다. 정치인과 정당은 사회적 기능보다는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이익을 위해 선거에 집착한다. 따라서 국정연설 등에 대한 정책토론이나 쓰러져 가는 중소기업에 대한 공청회 한 번 벌이지 않으면서도 선거구 획정 문제에는 국회를 공전시키면서까지도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이런 행태 앞에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도대체 정당의 기능, 나아가 정치의 효용이 무엇인지 의심한다. 실제로 60%에 가까운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치와 새 정치의 부재가 유권자들을 열패감, 상실감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은 말할 것도 없고 예산편성의 기본이념을 두고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립은 상당부분 11월의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선을 위한 전초전으로 국정운영의 핵심인 예산과 관련한 정책대결을 벌인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의회에서는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각 상임위원회가 공청회를 연다든가 하면서 진상조사도 하고 의견도 수렴한다.
선거가 중요하긴 하나 그것이 결코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정책토론도 벌이고 정책대안도 제시하는 정치가 될 때 식상한 유권자들로 하여금 다시 정치를 맞아들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