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문인들의 “참혹한 희생” 고발/반소비에트 작가들에 대한 스탈린 만행 열거/만델쉬탐·바벨·고리키 등 핍박상 생생히 전달「그들은 예순다섯살 먹은 병든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가죽채찍으로 등짝과 발바닥을 마구 때렸다. 며칠 뒤 다리에서 피하출혈이 일어났으나 그들은 그 위에 다시 채찍을 내리쳤다. 차라리 교수대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연극무대감독이었던 소련의 브세보로드 메이어크홀드가 스탈린시대 반소비에트행위로 체포돼 심문받는 과정을 본인의 구술을 통해 기록한 국가안보위원회(KGB) 비밀문서의 일부이다. 메이어크홀드는 곧 총살당했다.
박해받은 러시아문인들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있는 러시아의 비탈리 쉔타린스키가 엮은 자료집 「KGB문학문서보관소:러시아의 억압받은 작가들에 대한 발견」(하빌프레스간)이 영국에서 출판됐다.
반소비에트행위로 체포, 구금, 총살당한 소련작가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는 책이다. 뛰어난 문학인 만델쉬탐, 바벨, 고리키, 불가코프, 프로렌스키, 프라토노프등이 국가권력에 의해 육체적, 도덕적으로 어떻게 파괴됐는가를 보여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스탈린의 만행을 열거하고 있다.
시인이자 희곡작가인 만델쉬탐은 1934년 스탈린을 묘사한 시를 발표했다가 체포됐다. 「크렘린 암벽거주자는 길을 막는다」는 시구절로 반혁명주의자 혐의를 쓴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아내와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정치국위원이며 이즈베스티야지 편집자이던 니콜라이 부하린에게 탄원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스탈린이 그를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풀려난 만델쉬탐은 스탈린을 찬양하는 송시를 지어야 했고, 스탈린을 미화하는 희곡을 써야 했다. 그는 정신병을 앓다가 1938년 다시 체포돼 10년 노역형을 선고받고 그 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쓴 불가코프와 파스테르나크가 스탈린과 통화한 내용도 들어 있다. 그들은 스탈린에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스탈린은 『무엇에 대해서』라고 물었고, 그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라고 대답했다. 스탈린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문학의 정상에 서 있었고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추앙받았던 막심 고리키도 희생양이었다. 고리키는 레닌에 반대했다가 이탈리아로 쫓겨간뒤 1928년 스탈린에 의해 되돌아 왔다.소련 전역에 수백 개의 고리키 동상이 서고 대저택을 받았으며 모스크바 중심가엔 고리키의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는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1936년 죽음을 앞두고 고리키는 아들 곁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결국 화장되어 크렘린 벽 속에 파묻힘으로써 죽어서도 스탈린의 노예로 남았다.<김범수기자>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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