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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수의 「허풍」(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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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수의 「허풍」(천자춘추)

입력
1996.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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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수 김명환(1913∼89)의 입담은 그의 대단했던 북솜씨에 지지 않을 정도였던 것 같다. 생전에 직접 구술했다는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남도 특유의 말꾸밈새와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에 젖어 제 풀에 흥겨워진다.나는 그 이야기중에서 『이건 참 거짓말같은 참말이여』라며 잔뜩 부풀려말하는 감칠맛 나는 표현들을 좋아한다. 그가 이렇게 신명을 내는 대목은 영락없이 누구누구의 음악이 이처럼 대단했고 누가누가 이렇게 멋진 음악을 했다며 칭찬하는 대목들이니 읽는 이들의 음악적 상상력을 부추기는 데도 그만이다.

김명환의 「거짓말같은 참말이야기」는 명창이자 명고수였던 장판개(1885∼?)를 회고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장판개의 소리는 오일육광장같은 데서 마이크 없이 소리해도 거짓말 좀 보태서 십리는 간다』거나 『그의 집안에서 소리를 하면 소리가 천장에서 둥둥 떠다니는데 대청에서 쇠문고리 큰 놈이 덜덜덜덜, 문풍지가 드르르를 하는데…』라는 비유가 그 예다. 장판개의 북솜씨에 대해서는 「북을 치는데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묻어 떨어져, 꽃이 되어 둥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쯤 되면 그의 말솜씨가 시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김명환은 장판개에게서 북을 배웠는데 그는 도저히 스승의 북솜씨, 더 정확히 북가락과 추임새에 배어 나오는 스승의 속멋을 흉내낼 수 없더라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장판개의 외양은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고 한다. 키도 작고, 얼굴은 심하게 얽은데다 피부색도 검어 그야말로 명창의 주요 3대조건이라고 할 인물치레는 전혀 못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장판개가 청중앞에 서기만 하면 인물이 달덩어리처럼 환해지니 청중의 관심은 소리와 북가락에서 풍겨 나오는 「속멋」에 쏠렸을 뿐이었단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에 멋이 하늘에서 오백석 왔는디 사백구십, 아니 사백오십석은 장판개가 다 묵고 오십석 갖고 딴 사람들이 나눠먹었다구』라는 말을 했을까. 여기서 말하는 「장판개의 사백오십석 어치나 되는 멋」은 말할 것도 없이 겉치레와 상관없는 속멋이었고, 명고수 김명환 뿐만 아니라 장판개의 음악에 귀와 눈이 환해지던 우리 음악청중이 키워 온 높은 경지의 음악미였다고 생각된다.<송혜진국립국악원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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