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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못 자라는 토양/방민준경제1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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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못 자라는 토양/방민준경제1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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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사이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은 눈부시다.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할 만큼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국기업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꽤 커진 국내시장을 노린 외국의 유통·판매업체들이 속속 상륙하고 있지만 이 땅에서 제조업을 하려는 외국기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오히려 잘 버티던 기업마저 보따리를 싸는 형편이다.세계화란 어렵게 생각할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세계는 우리나라를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세계화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업들이 세계 각지로 활발히 진출하는 것만을 보고 세계화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은 곧 세계의 일원이 되겠다는 것인데 세계화가 제대로 추진되고 있다면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과 함께 외국기업의 국내진출도 활발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은 투자지로서 이 땅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91년이후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실적은 건수나 금액면에서 매년 25∼50%의 가파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92년 해외진출실적(누계)은 2,138건에 45억700만달러였는데 전년에 비해 건수는 27.8%, 금액은 33.6% 늘어났다. 94년에는 4,161건에 76억4,900만달러로 전년대비 각각 51.1% 37.2%가 늘어났다. 작년에도 11월말 현재 5,175건 99억5,600만달러로 각각 24.4% 30.2%의 신장세를 보였다. 기업의 해외진출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파문 이후 더욱 격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의 국내진출 상황을 보자. 91년(누계) 진출기업수가 1,858개였고 92년 1,881개로 겨우 23개가 늘었다. 그나마 93년엔 37개업체가 줄어들었고 94년에 겨우 11개업체가 늘었다. 95년(9월말 현재)에 175개업체가 늘어났으나 대부분 유통서비스업체였다.

있던 외국기업도 짐을 싼다. 91년 국내에서 철수한 외국기업이 142개였으나 92년 161개, 93년 202개, 94년 253개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해외로 달아나고 외국기업은 들어오려 하지 않고, 있던 기업마저 떠나는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의 경제토양이 더이상 기업이 제대로 자랄 수 없을만큼 척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길하고 위험한 신호다.

총수들이 법정에 서는 곤욕을 치른 재벌들은 투자마인드를 잃고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정부가 등을 두드리며 투자에 나서도록 달래고 있지만 심드렁하다. 선진국조차 온갖 혜택을 주면서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는데 이 땅에서는 잘 하는 기업인을 못살게 군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가능한 한 국내투자는 자제하고 외국에서 투자적지를 찾고 있다. 이런 분위기 역시 척박한 경제토양의 한 모습일 것이다.

부도가 유난히 심한 것은 기업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뿌리가 약한 것은 기업의 씨앗이 부실한 탓도 있지만 우리의 경제토양이 씨앗이 제대로 자라게 하지 못할 정도로 척박하다는 말이다.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에 이어 대형 건설업체마저 쓰러지자 정부가 부랴부랴 긴급대책들을 내놓고 있고 금융기관들도 다투어 기업지원을 선언하고 있지만 속빈 정책들이 태반이다.

경제토양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선 부도를 막을 수 없다. 메마른 토양에 물 몇 바가지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31일 김영삼대통령이 30대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척박해진 경제토양을 비옥하게 하겠다는 약속처럼 재계에 용기를 주는 선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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