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인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검찰이 정치권에 대해 엄중한, 그리고 대대적인 사정을 단행할 것이라는 얘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었다. 전두환·노태우씨 등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수사를 계기로 소위 불법적으로 검은 돈이나 각종 이득을 챙긴 정치인들에 대해 가차없이 조사, 척결하겠다는 것으로서 대상은 처음 여야의원 30명설에서 20명, 10명, 막바지엔 6∼7명설까지 파다했었다. 하지만 새해들어 정치권 사정얘기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정치인·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국리민복을 위해 일할 신성한 책무를 갖고 있다. 때문에 헌법은 국회의원의 청렴의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의무 등을 규정했고(46조),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은 품위유지, 청렴의무, 직권남용금지 등을 명기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비리는 부정부패의 독버섯이 되어오고 있음은 잘 알려진 일로서 김영삼정부는 이를 한국병으로 규정, 발본을 약속했었다. 검찰이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도중에 예외없는 정치인 사정을 강조, 두 전직대통령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았거나 의정활동과 관련하여 기업인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고 또는 기업체의 약점을 들어 협박하여 돈을 뜯은 혐의 등을 수사할 것이라고 했을 때 국민들은 크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때 정치권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요란했던 정치권 사정은 결국 지난달 하순 검찰이 새정치국민회의소속 김병오의원을 6·27지방선거때 구청장후보 공천과 관련,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소환, 조사하는 것으로 사실상 일단락됐다.
어쨌든 정부·검찰이 여야를 막론하고 성역없는 시행을 호언했던 정치권 사정이 흔적도 없이 실종된 것은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엄청난 정치인들의 비리를 포착했지만 선거를 앞둔 정국혼란을 우려, 백지화하기로 한 것인지, 지금은 때가 아니어서 일단 수사를 보류한 것인지 궁금하다. 만일 처음부터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면서도 엄포용으로 으름장을 놓은 것이라면 그야말로 국민을 우롱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여야 각당은 오직 총선거 승리만을 위해 전력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인물을 끌어들이거나 공천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 비리인사들이 끼여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럴 경우 정치권은 비리에 비리를 추가하는 셈이 되어 장차 정치풍토는 더욱 혼탁해지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정부·검찰은 정치인 사정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약속대로 한국병척결 의지가 있다면 비리의 경중에 관계없이 모든 관련 정치인들을 조사하여 총선전에 낱낱이 밝히고 의법조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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