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범제주도지사가 추진하기로 했다는 공무원의 「실수권인정제」는 잘만하면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자세를 일신해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풍토를 만들 수 있다는 데서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한다.신지사가 추진하려는 「실수권인정제」는 공무원들이 철저한 책임의식을 갖고 소신껏 공무를 추진하다가 범하게 되는 과실에 대해서는 문책하지 않겠다는 제도로 이제까지의 우리 행정 관행상으로는 파격적인 개혁발상이라 할 만한 것이다.
「과실을 범할 권리」라는 제도는 원래 미국의 경영학이론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기업들이 벌써부터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이 이론은 한마디로 모험 없이는 성장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성장을 위한 모험을 하다가 범하게 되는 과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구미선진국의 행정에도 이미 도입돼 민원공무원들에게는 상급자 결재라는게 없다. 담당자가 관계법령·행정경험 및 공복으로서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함으로써 민원 사무를 신속처리케 한다. 경험부족 등으로 일선 공무원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상급자의 의견과 협조를 구하는 식이다.
우리는 공무원들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아 공무원들이 양심에 따라 일을 처리할 기회 자체가 없다. 그것을 어기고 소신껏 일하려 하면 업무 감독이다, 감사원 감사다 해서 제동을 건다. 그로 인해 불편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민원인인 국민들뿐이다.
지금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민원업무에 대해 앞으로 엎어지는 자세가 아니라 뒤로 나자빠지는 자세다. 가능하면 해결해주려고 하기보다는 웬만하면 안해 주려고 한다. 관계법령이나 규정을 가급적 안되는 쪽으로 해석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서 무사안일이 생긴다. 이들에게 소신대로 일할 재량권이 주어져야 하고 그 결과 다소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민봉사에 충실한 나머지였다면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사실 건국 반세기가 흘렀건만 아직도 공무원들을 못 미더워해 재량권을 박탈함으로써 행정능률을 저하시키는 관행을 21세기 문턱에서까지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국가의 체모가 아니다.
물론 공무원 「실수권인정제」를 도입하자면 공무원들의 책임의식이 한차원 높아져야 하고, 뇌물이 개입된 특혜 등 실수권을 악용한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가혹할만큼 엄한 처벌제도도 병행해야 한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지사의 참신한 개혁구상을 총무처가 수용해 전공무원을 대상으로 시도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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