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또다른 정부가 있다」극작·연출가 이윤택과 우리극연구소의 낯익은 단원들이 새해 첫 작품으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정부가 있다」(2월25일까지·북촌창우극장)를 공연중이다. 이 작품은 이미 4년전 「런던 양아치」의 공연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영국작가 덕 루시의 82년도 희곡 「적의」를 이윤택이 재구성해 연출한 것으로서 제목이 드러내듯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신세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6명의 남녀가 함께 살며 펼치는 세계는 단순히 새로운 사고와 분방한 행태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축도로서 유형화한 인물상을 제시한다. 즉 집주인 남미정은 돈을 무기로 지배하려는 독재자이고,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조행덕과 이현아는 실은 순응하는 노리개이며, 거기 맞서는 김소희는 탈이념시대에 맞는 역할을 찾아 회계사가 되려는 운동권 출신인 반면, 기자로서 소희의 애인인 정철민은 독설을 퍼붓지만 정작 세상에 대항할 용기는 부족한 지식인의 전형이고, 임성진은 이상보다는 현실의 작은 행복을 선택하는 소시민이다.
물론 이런 유형들의 집단생활은 현실적 개연성이 약해 연극적 진실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나름의 장치가 필요하다. 강산에의 강렬한 음악이나 미정과 소희의 치열한 대결을 비롯한 배우들의 힘찬 대사와 몸짓은 분명 그 수단이다.
그러나 이윤택 특유의 강한 힘과 함께 왠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희곡으로부터 무대형상화를 거쳐 관객에 이르는 종적인 과정, 또는 연기 미술 음악등 횡적으로 결합하는 연극요소들 중 어딘가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우선 소희와 이미 에이즈의 공격을 받은 미정의 대결이 은연중 소희 쪽으로 기울고 성진의 소시민적 사랑이 에이즈에 걸린 현아를 포용하는등 정확한 현실분석을 토대로 해야 할 유형화에 막연한 희망을 개입시켰으며, 이윤택이 선택한 대사도 「언어의 연극」이라는 글을 통해 표방한 것과 달리 관념의 무게에 짓눌려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비경제적이라 할 만큼 가벼웠고, 배우들의 대사 또한 기교와 힘이 넘치지만 의미전달의 기본인 휴지와 억양 등에는 소홀했다.
이윤택은 작년 한 해 대단한 활동력과 성과를 과시했고 올해 역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 즉 엄청난 힘으로 객석을 압도하고 그만큼 관객도 몰리지만 그들이 연극을 평생 벗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앞서 말한 허전함을 채워야 하리라 본다.<오세곤연극평론가>오세곤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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