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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동하문학평론가(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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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동하문학평론가(소설평)

입력
1996.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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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남한산성」과 김향숙의 「미나」김지수의 단편 「남한산성」(「현대문학」 1월호)은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절망의 수렁으로 떨어졌다가 그 절망을 이기고 일어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 주인공이 과연 어떻게 해서 애초의 절망을 이겨내게 되는가를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시야를 거시적인 역사의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킨다. 그 결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과 일제말기에 정신대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피맺힌 사연이 소설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차원의 사연들이 소설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독자들이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 작품의 무대로 설정되어 있는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이다. 독자들은 이 공간적 배경의 효과에 이끌려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작품 속에 거론되고 있는 역사적 차원의 사연들에까지 시선을 넓혀가는 동안 유사이래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러한 실감을 바탕으로 하여, 참다운 남녀평등이 이룩된 세계에 대한 진지한 모색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가 하면 김향숙의 단편 「미나」(「문학사상」 1월호)는 9년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와 다시 한국의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미나라는 여학생이 너무나도 심하게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가출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미나와 다양한 그 주변사람들의 시각을 차례로 돌아가며 보여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처럼 특이한 방법에 의하여, 삶의 다면성과 진실의 복합성이 참으로 실감나게 부각된다. 그러나 이 모든 다면성과 복합성을 꿰뚫고 울려 나오는 핵심적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핵심적 메시지란 바로 자신과 다르면서 자신보다 약하고 외로운 존재에 대하여 이해와 관용으로 대하지 않고 우선 배척 혹은 조소라는 무형적 폭력을 가하며 더 나아가서는 유형적인 폭력행사까지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의 뿌리깊은 악습―인간의 역사가 비극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온 악습―이 반드시 거창한 역사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조그마한 일상의 차원 속에서조차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한산성」과 「미나」의 두 작품은 태초이래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온 폭력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어떤 독자는 두 작품의 공통점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하여 역사의 진보라는 것 전반에 대한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탐색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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