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 부근에는 직장인들이 짬을 내서 기웃거릴 만한 명소와 거리가 유난히 많다. 단원 김홍도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구내는 조깅이나 산책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점심시간에 「상투」잘린 조선총독부 건물을 두세바퀴 돌고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인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경복궁 근정전 앞길을 걸을 때마다 이벤트 하나가 떠오른다. 지난해 여름 SBS TV는 광복50주년과 한일수교30주년을 기념, 일본 TBS와 공동으로 「한일고교생 도미노(DOMINO)만남」이란 프로를 제작, 추석날 방영했다. 일본 시즈오카(정강)현에 있는 한 종합체육관에서 35일간 벌어진 도미노축제에는 박성환군(18) 등 부산외국어고 일어과학생 10명이 강선모PD(40)의 지휘아래 지도교사와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의 같은 또래 35명과 가로 2.1㎝ 세로 4.3㎝ 두께 0.8㎝짜리 작은 성냥갑만한 도미노 칩(팻말) 200만개를 세우는 대기록에 도전한 것이다.
먼저 체육관 1, 2층 바닥 700여평에 「후지산」「호랑이 민화」 등 양국의 민속그림과 피카소 고흐 등의 대형 명화 17점을 천연색으로 그렸다. 그런 다음 밑그림에 맞춰 색칠한 칩을 세워 나갔다. 평균 20㎡인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4만여개의 칩을 세워야 했다. 핀셋으로 조심 조심 세워놓아도 이곳 저곳에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하루종일 만들어 놓은 도미노 성이 귀뚜라미에 의해 연쇄적으로 붕괴되기도 했다.
드디어 8월28일 하오 8시 비공인 세계기록인 도미노 칩 200만개 쌓기에 성공했다. 이제는 완벽하게 쓰러지는 것이 문제였다. 양국의 대표학생이 최초의 도미노를 건드리자 칩은 초속 0.8의 속력으로 골인점을 향해 질주했다. 「타다타다」하는 파열음을 내면서 고속열차처럼 내달렸다. 도미노 칩이 쓰러진 자리마다에는 후지산이 솟아나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등 장관이 연출됐다. 두 나라 학생들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도미노 세우기는 좌절과 역경을 딛고 보람의 나이테를 그려가는 우리네 인생과 같다.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그린 밑그림위에 소망의 도미노를 세워 나가면 후회없는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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