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가라앉으면 오라”… 사채 시장 아예 취급 안해/금융기관들 대출확대 커녕 만기일 즉시 회수 태세우성건설 부도이후 은행 투금등 제도금융권은 물론 사채시장에서도 건설업체와 관련된 어음 유통이 사실상 마비됐다. 유수 재벌그룹의 계열건설업체가 아니고서는 건설업체발행 어음 할인을 금융기관이 기피하고 있다. 서울 명동등지의 사채업자들도 건설업체 어음은 받지 않고 있다.
건설업체에 각종 자재와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흑자부도가 확산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판유리를 가공해 D건설 경인지역 아파트건설현장에 납품해왔던 J유리(주) 김모사장(48)은 20일 이 건설회사로부터 받은 3개월 어음 1억원짜리를 평소 할인받던 K은행에서 현금화하려 했다. 그러나 창구직원으로부터 『우성이 부도난 마당에 건설업체 어음을 할인해줬다가는 문책을 당한다. 우성파문이 가라앉으면 그때 다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김사장은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끌어쓰던 사채시장에도 알아봤으나 「건설업체 어음은 취급치 않기로 했다」는 회답만 받아 앞길이 캄캄한 상태다.
아파트 건설업체는 목재 철강 콘크리트파일 시멘트 유리 벽지 조명 페인트 타일 위생도기 수전(수도꼭지) 벽지 바닥재 전기설비 가구등의 자재를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받기 마련이고 이들 납품업체들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하는 업체까지 합치면 관련 중소기업은 업체당 수만개에 이른다.
금융기관과 사채시장의 건설업체 어음 기피현상으로 충분한 기술력과 튼튼한 거래선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 연쇄부도로 이어지는 「흑자부도」도미노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전국의 기업 부도는 9월 1,071개사, 10월 1,183개사, 11월 1,308개사등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중 전문건설업체를 포함한 건설업체의 부도는 9월 127건, 10월 159건, 11월 169건으로 급증했다. 건설업체 부도가 일반 기업 부도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증거다.
기협중앙회의 한기윤조사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 부도가 주종을 이뤘으나 비자금사건 이후 지속되는 불황으로 튼튼한 거래선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쓰러지는 소위 「흑자부도」업체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번 우성건설의 부도는 이같은 흑자부도행진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올들어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완화시키겠다며 각 은행들을 독려한 결과 일부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해 종전 120∼130%씩 요구했던 담보비율을 낮추고 신용대출을 확대하는등 노력을 기울일 조짐을 보였으나 우성의 부도는 이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각 금융기관들은 대출확대는 커녕 이미 대출해준 자금의 만기일이 돌아오는대로 회수에 나서겠다는 자세다. 우성과 같은 대형업체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마당에 중소기업들의 앞날이야 「폭풍 속의 촛불」과 같고 중소기업이 부도가 나면 당장 대출해준 담당직원만 문책당하는데 자금운용을 보수적으로 하지 않을 재간이 있겠느냐는게 금융기관 일선직원들의 말이다.
중소기업들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속을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하게 된 것과 같다.<박정규기자>박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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