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절 “잡초같은 삶이 참된 저항” 깨닫게1986년 이른 여름 명동성당 앞에서 권인숙양 성고문 규탄대회가 있기 전날부터 공동대표인 나를 나가지 못하게 검은 승용차 세 대가 지켰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것은 나 하나라 대회사 폐회사 따위를 혼자 도맡게 되었다.
십여만 군중은 미도파, 백병원쪽에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하고 최루탄은 쏘아대고 나는 재빨리 수녀들의 도움으로 수녀원에 숨었다가 도망을 치게 되었다.
겨울이 오자 보안사에서 당한 고문후유증이 도졌다. 뜨끈한 방에서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만 마시면 살 것같았다. 하지만 아, 그때 그게 그렇게 쉬운가. 그 해 말께 붙잡히자 나는 독방에서 오줌, 똥을 받아내면서도 「기완아, 여기서 만약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면 우린 모두 죽는다」는 자작시로 마음을 달랬지만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의 아픔은 한이 없었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내 온 몸의 식은 땀은 문득 구수한 민물새우찌개 내음으로 달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내더러 신경림시인의 목계장터(시집 「새재」)를 넣어 달라고 했는데 교도소에서 안된단다. 왜? 그 시는 불순한 작품이란다. 실로 둘도 없는 수작이지만 그게 바로 전두환군사독재의 허무주의적 폭력의 수준이었으니 어쩔건가.
나는 천장에다 목계장터를 더듬어 새기곤 했다. 그 때가 바로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죽던 캄캄한 때라 「청룡 흑룡 흩어진 비개인 나루」라는 구절은 그렇게 물씬할 수가 없었다. 강물은 넘치지만 날은 개었으니 배를 저어 독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손짓같았다.
내가 이 시를 뜨겁게 보듬는 문학적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전통문학의 재창조라는 것.
둘째 이 시의 인간적 언저리다. 그때 죽음을 이마에 인 나는 그렇게 노여울 수가 없었다. 이것을 나는 민중적 저항의지라 여겼다. 그런데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돼라」는 대목은 어떻게 다가왔던가. 잡초의 삶이 곧 참된 저항이라는 일깨움이라, 이건 시적 완벽의 경지라 생각했다.
세번째 토속적 정서를 아울러 내는 우리 말의 빼어난 부림이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바로 이 구절인데 이것은 민족시인 백석의 경지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얼음을 꺼서 잡은 민물새우에 무와 고추장을 듬뿍 풀어 넣고 끓이는 찌개냄새….
이미 사라져가는 옛살나비(고향)의 정서를 되새기며 나는 얼마나 내 허벅지를 꼬집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잠들면 죽는다. 기어코 일어나 통일을 이루어 민물새우찌개에 막걸리, 한 번쯤 대빵 취해 볼 그 날을 달구던 아 목계장터. 나는 선언한다. 이 시와 함께 밤새 취할 사람은 없는가. 오라! 내 한 잔 사겠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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