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이 80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각당의 인물쟁탈전이 불을 뿜고 기선제압을 위한 갖가지 설전도 치열하다. 바야흐로 정치권은 물론 사회전체가 선거열풍에 휩싸여가고 있다.그러나 「선택」을 눈앞에 둔 유권자들의 시선은 어느선거때보다도 혼란스럽다. 표가 되고 의석확보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언제라도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권의 무원칙한 태도때문이다. 마치 음식점간의 원조논쟁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주요정당이 이전투구식 「보수원류」공방을 벌이고, 상품성만 엿보이면 과거경력과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영입경쟁에 나선다. 『일단 선거에는 이기고 보자』는 심사다.
최근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에는 극우와 극좌가 섞여있다』며 신한국당의 정체성문제를 제기했다. 과거 색깔시비의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국민회의로부터 기습적인 역색깔론 공격을 받은 신한국당은 서둘러 『국민회의는 위장된 보수주의의 가면을 벗어라』고 맞받아쳤다. 뒤질세라 자민련도 『색깔면에서 보면 두당은 도토리 키재기』라고 몰아치면서 차별성을 외치고 나섰다.
하지만 국민은 1주일이상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정당간의 입씨름을 보면서 『난데없이 웬 색깔시비냐』며 어리둥절해 하고있다.
물론 당내에서조차 영입한 일부 재야인사에 대한 사상검증주장까지 제기될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을 끌어들인 신한국당이 소모적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회의도 최근에 영입해 포진시킨 인물들의 면면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처지가 되느냐는 의문 또한 떨칠 수 없다.
21세기 치열한 국제경쟁 사회에서 힘을 모아가야 할 시점에서 여야가 벌인 시대착오적 행태는 어떤명분으로 포장하든 비판을 면키 어렵다. 소모적 색깔시비는 국민의 공감속에 이뤄지고 있는 과거청산작업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치적 냉소주의를 조장할 뿐이다. 군사정권의 색깔시비로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이 다시 그 낡은 무기를 꺼내 서로 상처내기를 하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하다.
지난날 안정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집권당이 개혁과 변화를 강조하고 변화를 외치던 야당이 오히려 「안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오는 현상도 적잖게 혼란스럽다. 가히 역전과 혼돈의 정치판이다.
최근 각당의 공천작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후보의 자질에 대한 평가는 뒷전인채 당선가능성만을 따진다. 마치 소비자들에게 질좋은 상품을 내놓기보다는 잘 팔리는 물건만 내놓는 악덕장사꾼의 행태와 다를바 없다. 더러는 「손볼 사람」을 겨냥한 이른바 표적공천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원칙과 노선이 배제된 당선지상주의 공천양태는 이당 저당 기웃거리는 「철새정치인」들을 양산한다. 그틈에 이들을 「영입」, 실속을 챙기려는 「이삭줍기」하는 얼굴 두꺼운 정당도 있다.
정치를 희화화하는 이같은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십년간 한국정치의 주역으로 대립해온 3김이 이번총선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대결장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파괴」와 「정치파괴」, 혼돈의 정치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면 틀린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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