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조로 곳곳 도로·하수관 공사 활기/「이」 정부 취업·물자통제 자립 걸림돌로/총선 통해 자치정부 들어서면 재건 본격화 기대예루살렘으로부터 70여㎞, 자동차로 2시간 남짓. 이스라엘의 점령지 가자지구는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점령지를 둘러싼 전자장치로 감시되는 철조망 담장은 양측의 거리를 한참이나 더 멀게 느끼게 했다. 같은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지역과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달랐다. 가자지구로 통하는 이스라엘측 5개 통로중 가장 규모가 큰 예레즈 검문소에 도착한 기자는 타고온 차에서 내려야 했다. 이스라엘 번호판을 단 차량은 돌팔매질이나 테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자지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거대한 「겟토(유대인 빈민굴)」를 연상시켰다. 이스라엘 점령 27년동안 보수 한번 하지 않아 막힌 하수관으로 인해 곳곳이 침수되고 포장 흔적조차 남지 않은 도로 곳곳은 팬채 먼지가 일었다.
시나이사막으로 연결된 척박한 모래땅인 가자지구의 생활환경은 서안 자치지역에 비해 턱없이 열악했다. 그만큼 증오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가자지구가 과거 팔레스타인 자치를 가져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 근래에는 반아라파트운동의 중심무대가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사막 모래구덩 한가운데에 덜렁 놓아두고 떠나갔다. 이것이 자유인가』 엔지니어였으나 지금은 실직상태인 아지제씨(28)의 푸념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자치를 주면서 대신 가자지구내에서만 15만명을 상회하던 이스라엘내 취업자수를 2만명선으로 묶어 버렸다. 그결과 60%를 넘어선 실업률은 가자지구가 안고 있는 최대의 골칫거리다.
이스라엘내 취업은 돈과 자원이 부족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생명선」과 다름없다. 이스라엘은 이 취업자 수를 줄였다 늘렸다함으로써 「팔레스타인 길들이기」의 고삐로 삼고 있다.
반이스라엘시위나 테러가 일어났을 때 통상 취하는 지구봉쇄조치가 지속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이같은 연유에서다. 94년 5월 자치가 실시된 이후 1년 8개월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통로인 예레즈 검문소가 폐쇄된 날은 220일이 넘는다. 이런 때는 건자재를 비롯해 이스라엘에 의존하는 생필품의 반입이 전면 중단돼 가자의 모든 기능은 말 그대로 「올 스톱」된다. 이와관련, 프리랜서로 로이터통신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 룰라 할라와니 기자는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인종분리정책이 만들어 놓은 격리수용소』라고 단정했다.
가자시 중심가인 미단 팔레스티니에서 부품상을 운영, 비교적 부유층에 속하는 브라힘 다우드씨(35)조차 『지금의 평화는 정치인끼리의 평화』 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진짜 평화란 차에 시동을 걸어 가고싶은 곳을 맘대로 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측의 허가 없이는 지구밖으로 한발도 내딛을 수 없다. 총 51㎞철조망으로 둘러진 이스라엘측의 보안선을 무단 침범할 경우 언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른다. 이스라엘군에게는 자위권차원에서 침입자를 사살해도 된다는 명령이 내려져있다고 예레즈 검문소 경비담당 이단 소위는 전했다.
평화협상에 중대 장애인 이스라엘 정착촌은 가자지구내에도 빠짐없이 서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적개심이 타 지역보다 높은 만큼 긴장감도 더하다. 주로 해안가에 위치한 정착촌과 이스라엘 본토를 연결하기 위해 뚫어놓은 3개의 안전도로는 세르비아계에 포위됐던 사라예보시를 연결하던 회랑을 연상시킬 만큼 살벌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군의 호위를 받는 정착민 차가 지나갈 때 팔레스타인인들의 차는 갓길로 빠져 서 있어야 하는 룰아닌 룰이 있다. 지나가는 차량으로부터 정착민들이 자주 공격을 받게되자 이스라엘군이 움직이는 차량에 대해서는 테러 행위로 의심해 선제제압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평화기운은 분명히 움트고 있었다. 그하나의 표시가 가자입구에 세워져 있는 국제원조단의 대형입간판이다. 한국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원조국가들의 명칭을 일일이 적어 놓은 이 간판에는 「평화를 이루자」는 문구가 평화정착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지구내에서도 속속 답지하는 지원금으로 푸른 공원이 조성되고 도로가 새로 깔리며 하수관이 정비되는 변모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및 내부의 정치적 사안에 매달려 경제문제를 등한시 했던 자치기구도 20일 평의회선거를 통해 자치정부를 구성하면 경제재건에 본격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자시상공회의소의 이스마일 아메드 의장은 『지금은 분명 어려운 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도 힘들었던 27년(이스라엘 점령기간)을 견뎌왔다. 가자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가자지구를 빠져 나올 저녁 무렵, 이스라엘에 일나갔다 돌아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끝없는 행렬과 마주쳤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그들의 표정에서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을 느낄수 있었다.<가자지구=윤석민특파원>가자지구=윤석민특파원>
◎가자지구는 어떤 곳인가/예리코와 함께 자치 첫 실시/인천 크기 면적에 인구 85만
가자지구는 1차 자치협정에 따라 94년 5월 요르단강 서안내 예리코와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가 처음 실시된 곳이다. 총면적은 352㎢로 인천시(338㎢)보다 약간 크지만 이가운데 40%정도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잠식해 있다. 인구는 85만명으로 1인당 소득은 이스라엘인의 10분의 1 수준인 1,200달러에 불과하다.
이곳은 47년 이스라엘 건국을 규정한 유엔결의안 181조에 따라 서안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랍국가 창설이 약속돼 있던 땅이었으나 67년 3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이후 자치실시전까지 27년간 이스라엘군이 장악해 왔으며 87년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이스라엘 독립항쟁인 「인티파다(봉기)」와 테러활동의 중심지가 돼왔다. 94년 7월 27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아라파트 의장이 팔레스타인자치기구를 이끌고 있는 곳이다.
◎자치실험 20개월 가자지구/아운 타와 시장에게 듣는다/“투쟁구호 낙서지우기도 큰 일”/실업률 60% 넘어 일자리 창출 가장 시급/SOC 미비 개발 어려움… 한국투자 기대
『가자는 이스라엘 점령 27년동안 모든 것이 정지한 암흑의 도시였다. 이스라엘측이 갖다버린 쓰레기와 폐기물만 가득찼을뿐 투자는 전혀 없었다. 지난 1년반동안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94년5월부터 팔레스타인 자치가 최초로 실시된 가자시의 아운 타와 시장(61)은 자치후 달라진 점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높은데.
『우리 앞날을 우리 손으로 개척한다는데 주민들이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 경제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측이 한정된 일자리만 제공해 가자내 실업률은 60%를 상회한다. 이들을 위해 직업을 창출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시재건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이다. 도로, 교통 등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다. 그중 생활환경개선을 위한 하수시설사업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이달중 국제원조단으로부터 2억달러상당의 지원금이 도착하면 보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애로 사항은 무엇인가.
『투쟁구호 낙서 지우는 일만도 벅찰 지경이다(웃음). 역시 돈과 이스라엘의 간섭문제 두 가지이다. 가령 이스라엘수표는 가자내에서 통용되지만 팔레스타인인의 수표는 가자밖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건자재 조달도 이스라엘측 통관절차로 지연되기 일쑤다. 경제에 자본과 활력을 불어넣을 해외 팔레스타인유민들의 귀국문제도 아직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원조단의 일원인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역동적 경제체제를 가진 한국의 많은 투자와 지원을 기다린다』
카이로의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운시장은 팔레스타인자치기구(PNA)에서 손꼽히는 경제통이다. 인티파다(반이스라엘봉기)로 인한 이스라엘측의 봉쇄조치로 운영하던 농산물중개업을 포기하고 아라파트 의장의 경제자문이 됐다. 이후 94년 파리 경제회담협상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자치정부의 미래가 경제재건에 달려있다는 아라파트의 판단에 따라 첫 시장에 임명됐다. 아운 시장은 증조부가 가자시의 초대시장을 역임하는 등 대대로 시장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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