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70년대말 대학가에 유행하던 「친구」 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유신과 신군부로 가는 길목에서 젊음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은 다소 느린 곡조의 이 노래를 기억한다.2000년대를 눈앞에 둔 요즘 정치권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시대의 고민을 함축한듯한 이 노래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암울했던 70년대와 80년대를 온몸으로 싸워왔다는 이른바 두 김씨의 정파가 바로 그들의 과거를 놓고 치졸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이런 물음은 거듭된다.
「색깔」이란 말은 우리에게 꺼림칙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분단상황에서 이 말의 위협적 성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각 정파가 자신의 색깔에 대해 방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벌이는 색깔론 싸움은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인정한다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거 군사정권이 이들을 옭아매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을 그대로 원용하는 현실에 헛헛한 웃음이 나올 뿐이다.
4·11총선은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국민회의총재에게는 정치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렇다 해도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민주세력을 매도하면서까지 표를 얻으려는 행위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권획득을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적 가치도 팽개치는 집단이 정치권이라는 인식을 재확인케 할 뿐이다.
물론 이번에 제기된 색깔론은 과거와 약간 다르다. 국민회의가 신한국당의 정체성에 시비를 걸고 신한국당이 되받아치는 과정에서 확대재생산됐다. 그러나 전개과정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색깔론을 누가 먼저 제기했고 누가 변질시켰는가는 더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군사정권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과거의 동지를 공격하는 정치인은 과연 살아있는가. 유권자들은 곰곰이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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