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위에 가설공장 세우고 억척조업/1년만에 구두공장 1,600여사 가동/동포들 신발부흥협 등 적극적 참여고베(신호)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JR 고베선 다카도리(응취)역과 신나가타(신장전)역 주변은 간사이(관서)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나가타(장전)구 중심부다. 지진에 이은 화재로 옹기종기 모여살던 100여명의 우리 동포들이 숨진 곳이기도 하다. 불탄 잔해가 제거되고 구획정리가 끝났지만 검은 평원은 지금도 노천탄광을 방불케 한다. 지진전 일본 전체 신발 생산의 80%를 차지했던 공단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구두와 신발업체 2,000여사가 몰려 있던 와카마쓰(약송), 가쿠라(신락), 호소다(세전) 지역을 휩쓴 화재로 나가타의 신발산업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중 65%가 재일동포들의 공장이었다.
생업의 터전을 잃은 동포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불탄자리에 빨리 가건물을 짓고 기계를 돌렸다. 더러는 부동산업자들이 지은 가설공장을 임대해 조업을 재개했고 공공 가설공단에 입주하기도 했다. 이같은 억척으로 이지역 구두공장은 1년만에 1,600여사가 조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화재로 16평 규모의 구두깔창 공장을 잃은 동포 2세 현영희씨(46)는 불탄 자리에 9평 정도의 가건물을 짓고 지난해 4월부터 기계를 돌리고 있다. 주문은 과거의 절반에도 못미치지만 6인 가족 생계는 이을만 하다. 『낙담만하고 있다고 누가 밥을 먹여주느냐』며 긴 한숨이다.
전재산을 잿더미로 날린 동포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일본정부의 차별 없는 지원이다. 2,000만엔의 연불 무이자 신용대출과 5,000만엔까지의 보증대출로 가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아쉬운대로 장비도 구입했다. 한국정부가 제공한 1,000만엔의 저리융자도 큰 힘이 됐다.
동포들은 「고베신발부흥협의회」등 구두 업자들의 모임이나 마을 단위로 활동중인 「부흥개발주민협의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고베시 당국에 가설공단설치를 제안, 고마에이(구영)지구등 공원과 나대지에 신발부품업체등을 입주시킬 수 있었던 것도 동포조직의 힘이었다.
지진후 중국제품등 값싼 외국산 신발의 수입 물결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합성피혁제품도 시즈오카(정강)등지로 주문이 옮겨 가면서 나가타구 동포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들어 캐주얼신발 유행이 시들해지고 정통 고급구두를 찾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그나마 희망을 주고 있다.
동포들은 새 봄이 오면 그동안의 한을 떨쳐내고 신명나는 사물놀이마당을 펼칠 계획이다. 그날을 기다리는 동포들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고베=황영식특파원>고베=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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